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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문 자리

박정철 2019.02.23 11:09 조회 수 : 17

설교자 박정철 
설교일 2019-02-24 
설교장소 한맘교회당 

 

하늘 문 자리(28:10-19)한맘

 

 

 잠들기 전에 하는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된 습관입니다. 그러니 많이 피곤해도 눈을 붙이기 전에 짧게나마 기도를 합니다. ‘하루의 삶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 밤도 편히 쉴 수 있기를 원합니다.’라는 기도의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아예 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자다가 한밤중에 깨서는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갱년기 증상으로 호르몬에 이상이 생겼는지 아니면 커피를 많이 마셔서 신경 계통에 교란이 발생해서인지는 몰라도 아무리 몸을 뒤척여 봐도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몰라요. 애가 탑니다. 그러면서 이런 고통에 힘들어한다는 이들의 심정도 헤아려보게 됩니다. ‘, 잠을 못 이룬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이구나.’ 무엇보다 그 애태우는 시간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제발 잠 좀 자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참으로 희한한 것은 늘상 드리는 기도지만 쉽게 잠을 이룰 때보다 그렇지 못할 때에 더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빈도와 강도가 훨씬 더 많아지고 세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괜찮을 때보다 괜찮지 못할 때에 기도를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축구 경기를 보면서도 그렇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속한 팀이 상대팀을 쉽게 이길 것 같으면 기도가 덜해집니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경기가 진행되거나 승부차기를 하게 될 때면 긴장감으로 손에 흐르는 땀만큼이나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됩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 경기 시작 전에 보니까 누구도 기도하고 누구도 너희들처럼 기도하는 것 같더라.” 그랬더니 아이들이 그럽니다. “아빠, 없는 종교도 생기겠어요.”

 

 우리네 인생이 살아지다 보면 그렇습니다. 살만 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지낼 만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전도서의 지혜자가 말하듯 얻을 때가 있는가 하면 잃을 때가 있고, 채워질 때가 있으면 빠져나갈 때도 있습니다. 건강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병약해질 때도 있는 것이 인생이요, 꽃길이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이야 누구나 같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가시밭길을 걸으면서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알게 되는 분명한 사실 중의 하나는 다른 게 아니지요. 지낼 만 하거나 살만해 하면 그만큼 하나님을 덜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게 생각처럼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들 그렇게 말들을 하지만 인간은 간사하다.’는 겁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로 당신을 찾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 이르게 하실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정말로 귀하고 복된 것은 살만하고 지낼 만 한 세상살이가 아니라 바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헛되이 낭비하는 인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인생을 살게 하시다가 영생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지금 형편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왜 이런 슬픔이 찾아왔냐고한탄하고 한숨을 쉬고 있는 이들이 있지는 않는지요. 그렇지만 바로 그러한 때가 하나님을 만나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큰 뜻을 헤아리게 되는 복된 은혜의 시간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야곱이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 가고 싶지 않은 길입니다. 그렇지만 갈 수밖에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이 아니면 갈 길이 없었던 것이지요. 죽지 않으려면 가야만 했던 길이었습니다. 등 떠밀려서 그 길을 재촉하여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란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길을 가야만 하는 자들이지요.

  왜 야곱이 고향 산천 부모님이 계시는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야만 했습니까. 그것은 쌍둥이 형 에서가 장자로서 받아야 할 축복을 자기가 받고자 연로하여 눈이 쇠약해진 아버지 이삭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그는 형 에서의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그는 이제 형 에서가 아버지의 죽음만을 기다렸다가 곧장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어머니 리브가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서둘러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으로 떠나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 길을 가면서 만감이 교차했겠지요. 어릴 때부터 마음껏 뛰어다녔던 고향 산천이 점점 멀어져만 갑니다. 아련한 추억들이 쌓인 그곳이 자기에게서 떠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발걸음은 앞을 향하고 있지만 마음은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산천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제는 연세가 드셔서 노쇠함으로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이는 아버지 이삭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옵니다.

  무엇보다 자기를 너무나 아껴주었던 어머니 리브가를 향한 마음에 발걸음이 떼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함으로 마지막 떠나는 그 순간까지 손을 놓지 않았을 어머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자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을 어머니, 길 모퉁이를 돌아 자기가 보이지 않을 그 순간에도 기도했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부터인가 자기를 향해 싸늘한 눈빛을 보였던 형 에서, 눈을 부라리며 살기까지 뿜어냈던 형 에서를 생각하니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서둘러 그 길을 재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라도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 싶은 자기 연민에 사로잡히니 신세가 처량하고 처지가 기구하고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 없습니다.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 모진 것일 수도 있겠지요.

  이렇게 야곱은 하란을 향해 길을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저마다 어촌 마을 월포로 가는 것입니다. 양남으로 가고 한맘으로 가는 것입니다. 울산으로 가고, 대구로 가고, 의정부로 가고 김해로 가는 길입니다. 부슬거리면서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걷잡을 수 없는 회한과 함께 울분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 했는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살았는데.’ ‘왜 내게만 이런 고난이 찾아오는 것인데.’ ‘나보다 더 한 놈들은 잘만 살아가고 있는데.’ ‘세상이라는 것이 도대체 왜 이 모양인데.’

 

 야곱이 얼마나 정처 없이 걸었을까요. 이제 한 곳에 이르렀는데, 해가 져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습니다. 그곳에서 유숙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밤이 주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밤이 되면 더 큰 쓸쓸함이 찾아듭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 찾아오는 사람 없어 / 밝은 달만 쳐다보니 / 외롭기 한이 없다 / 내 동무 어디 두고 / 이 홀로 앉아서 / 이 일 저 일 생각하니 / 눈물만 흐른다

  야곱은 지금 루스라고 하는 곳에서 유숙해야 합니다. 그곳에 있자니 해가 있는 동안에도 그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걱정과 염려, 불안과 두려움이 빈들의 스산한 기운과 함께 더 크게 찾아듭니다. 이러한 순간에 어머니라도 함께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어머니 품을 향해 가서는 편히 누웠을 그때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옵니다. 돌베개를 하고 누웠지만 그 돌베개는 엄마의 무릎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그 어머니의 따듯한 품을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납니다. 당장이라도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그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며 불렀을 노래가 있었겠지요. ‘가을 밤 외로운 밤 / 벌레 우는 밤 / 초가집 뒤 산 길 어두워질 때 /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혼자라는 것, 홀로 남겨졌다는 것, 외딴 섬처럼 홀로 된 느낌, 버려진 것 같은 상실감, 초조함, 초라함,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구할 수 없는 황량한 벌판, 그러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나오는 이상야릇한 부정적인 생각들, ‘기구한 운명이려니’ ‘저주받은 인생이려니’ ‘더러운 팔자려니하는 것들.

  밤의 적막감과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지는 영혼의 적막감, 밤의 어두움보다 더 암담한 내일.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 다음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 꿈조차 꿀 수 없고 희망조차 사치가 되고 고문이 되는. 이 밤이 지나면야 해가 뜰 것이지만 어제와 전혀 다르지 않을 오늘일 것이기에 자기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한숨. 그 한숨이 내 심령의 골짜기에 메아리 쳐서 울려나고.

 

 어지러운 생각들로 딱딱한 돌베개를 베고서 고단한 몸을 눕혀서는 얼마나 뒤척였을까. 잠시라도 눈을 붙였을까. 바로 그때 야곱은 놀라운 꿈을 꿉니다. 예상치 못한 꿈을 꿉니다.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습니다. 또 보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아멘.

  정말이지 꿈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꿈조차 꿀 수 없는 그 상황에서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축복의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었던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기대하게 하셨습니다. 자기 인생이 사방팔방으로 다 막혀 절망이라 여겼는데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아 있었던 것입니다.

  홀로 버려져 남겨진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로 세상마저도 버린 자라 여겼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하던 자기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혈혈단신인 줄 알았던 자기에게 자손의 번성함을 주시어 땅의 티끌같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자기와 자기 자손으로 인해 복을 받게 될 것이라 하시는 것입니다.

 

 가장 어두운 밤에 가장 환한 빛이 임한 것입니다. 가장 어지럽고 혼란한 상태에서 가장 큰 평안함이 임한 것입니다. 내면의 질서가 잡힌 것입니다. 가장 힘이 드는 그때에 힘이 되시는 여호와를 만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울의 위대한 신앙고백을 다시 한 번 들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약한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b)

  여기에서 야곱은 깨닫습니다. 힘들지 않았다면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약하지 않았다면 강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고통스럽지 않았다면 치유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가난하지 않았다며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그 눈물을 닦아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넘어지지 않았다면 그 넘어짐에서 일으켜 세워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이제야 야곱은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절망이 없다는 것을 말이지요. 하나님 안에서는 저주가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자기는 기구하고 저주 받은 인생이려니, 팔자가 사납고 더러운 줄만 알았는데, 그것은 자기 생각이었지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29:11)

 

 야곱은 자기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밑바닥에서는 자기 마음도 자기를 떠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 마음도 자기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바닥에서는 이 세상의 그 어떤 누구도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심지어 자기를 그렇게 아끼고 사랑했었던 어머니조차도 말입니다. 오직 그 자리에서는 하나님만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또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엄마의 치마폭 사랑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엄마의 치마폭 사랑이 아무리 크다고 한들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에게 혼날 때마다 재빨리 찾아들었을 그 치마폭의 한계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형이 놀리고 때릴 때마다 찾아들었을 그 치마폭, 형이 잘못한 것이 고자질하기 위해 찾아들었을 그 치마폭의 한계를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자리에도 함께 하실 수 있으며, 그 하나님만이 자기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를 헤아리는 눈이 열린 것입니다. 그 믿음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 야곱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리고서는 고백하지요.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자기가 알지 못했을 뿐이지요. 자기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을 뿐이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신 것은 아니었지요. 빈들이요, 광야요, 해가 진 어둠의 자리요, 스산한 밤바람과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괴로운 인생이 고통의 신음소리를 격하게 토해낼 수밖에 없었던 자리이면서 내일의 그 어떤 기대와 기약도 가져올 수 없는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함께 계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 놀랍고 엄청한 사실을 야곱이 깨닫고서는 두려웠지요.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했던 것들, 자기 좋을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큰 불신앙의 죄인 줄을 알게 되면서 두려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7절에서 그러지요.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로다.’ ‘! 여기 이 자리도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구나!!’ ‘, 우리네 인생들이 살아가는 모든 곳이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로 통하여 열리는 하늘 문 자리구나!!’

  내가 생각하기도 싫은 자리라 해서, 내가 원하지 않는 자리라고 해서, 인생의 밑바닥을 치고, 가시밭길 내리막길 돌짝밭이라 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증거라도 되는 냥 함부로 불평하고 원망하고 짜증과 신경질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야곱은 깨닫고 또 깨닫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그 자리에서 보배로운 믿음을 가집니다. 그 자리에서 소망을 가집니다.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실하게 정립하게 되지요.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내 인생이 저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복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구나!’ ‘나는 안 될 사람이 아니라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구나!’

  바로 그것입니다. 황량한 벌판, 짙은 어둠, 스산한 바람, 짐승들의 울음소리, 절대 고독의 자리요 절체절명의 자리가 이제는 자기를 위해서 준비해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는 자기가 형 에서의 분노와 살기를 피해 도망치는 자리였거나 죽지 않으려고 내쫓기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경륜과 섭리 속에서 야곱 자기를 한 민족을 이루는 이스라엘로 빚어내시기 위해서 이끌어 내신 자리였던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엄마 치마폭 사랑에만 머물러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엄마, 엄마, 엄마만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에든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한 자리였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야곱이 깨달아 알게 되었을 때에 얼마나 기뻤을까요. 자기의 걷는 걸음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을 때에 그 입에는 찬송과 감사가 꿀처럼 흘러 넘쳐 났겠지요. 그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존과 생계와 생활과 생명까지 책임지시고 주관해 가신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이제 여호와를 앙망함으로 힘을 얻습니다.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같이 심령에 용기가 용솟음칩니다. 계속해서 걸어갈 것이지만 피곤치 않을 것입니다. 달려갈 것이지만 곤비치 않을 것입니다. 이 새봄에 땅과 씨앗이 봄비로 인해서 한껏 물을 품듯이 야곱이 하나님으로 한껏 기대를 품었을 것입니다. 어리기 때문에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으로 충만합니다. 새파랗게 젊다는 것으로 한 밑천을 잡아서 가슴을 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서 가슴이 펴지는 것입니다.

  이제 천지를 지으시고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으니 그 자리에서 예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납니다. 지체할 수 없습니다.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서는 그 위에다가 기름을 붓습니다. 그 이름을 벧엘이라 짓습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서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습니다.

 

 이제 야곱이 또 길을 떠납니다. 어제 걸어왔던 그 길을 또 다시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제 걸었던 그 걸음걸이 하고는 완전히 다르지요. 어제 걸었던 걸음을 뒷걸음질 치는 걸음이었을 것이지만 이제는 앞을 향해 걷는 걸음입니다. 어제의 걸음을 세상의 짐을 혼자 다 진 것 같았을 걸음이었지만 오늘 걷는 걸음은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벗어버린 걸음입니다.

  우리는 오늘을 살면서 저마다 나무를 하고 물을 긷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안에서 우리 신앙의 동지들은 어제와 같이 오늘도 나무를 하고 물을 긷지만 완전히 다른 것이지요. 오늘도 어제와 같이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지만 다른 것입니다. 어제와 같이 오늘도 직장에 나가지만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오늘을 살지만 어제와는 다른 삶인 것입니다. 죽지 못해서 사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너머 사는 삶인 것이지요.

  사랑하는 신앙의 동지 여러분,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자리자리는 하늘 문 자리입니다. 하늘로 통하는 하늘 문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에서 문을 열어놓고 계십니다. 그 문을 열어 불러주시고, 그 문을 통해서 복을 주십니다. 이 귀한 은혜를 깨달아 알아 야곱처럼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꿈에도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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