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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손 하나님

박정철 2019.01.24 21:07 조회 수 : 19

설교자 박정철 
설교일 2019-01-27 
설교장소 한맘교회당 

                                      가위손 하나님(12:1-9)한맘

 

 

 

 

 

  한번은 TV에서 100년 묵은 여우가 아니라 100년 묵은 칡을 캐는 프로가 방영되는 것을 봤습니다. 칡은 물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는 계곡 쪽으로 잘 자리를 잡는다 합니다. 작업자가 드디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높고 깊숙한 곳에서 칡 군락지를 발견합니다. 어마어마한 대물을 만날 기회를 잡은 것이지요.

  그런데 그가 처음에 작업을 시작하면서 흙을 이리저리 주위 이곳저곳을 걷어내면서 살피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하는 말입니다. “칡뿌리가 아무래도 여러 갈래로 뻗어가게 되면 그만큼 영양분이 분산되기 때문에 약성이 덜하다는 것입니다. 한 뿌리로 굵게 뻗어가야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네 삶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네 모습에서도 보면 생각이 집중되지 못하고 분산되어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생각만 복잡할 뿐 정리가 잘 되지 않습니다. 집중적인 단순화된 삶이 아니라 이리저리 분산되어 흐트러진 경우일 때가 많은데, 그러다보면 알이 굵은 큰 고구마가 수확되는 것이 아니라 잔챙이들인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농사를 지을 줄 아는 농부들은 고구마 줄기들이 뻗어서는 몇몇 군데에 걸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넝쿨을 걷어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지요.

  며칠 전 몇 명의 조경사들이 도시 공원에서 사다리에 올라서는 나무들을 전지(가지치기) 해 주는 것을 봤습니다. 웃자라난 가지들을 정리해주면서 나무의 모양을 산뜻하게 해 주고 있었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겨울나무가 이발을 한 것 같이 말쑥한 것이 보는 사람마저 기분을 좋아지도록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겨울이 한껏 깊어지는 이맘때쯤이면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포도나무 껍질을 벗기는 것과 함께 전지해 놓은 포도나무 가지들을 주워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연례 행사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전지해 놓은 가지들을 주어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 집으로 들이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날 언 손과 볼을 비며가며 몇 날 며칠을 고생해야만 했습니다.

  한 번은 누가 그럽니다. “포도는 그래도 포도를 수확하는 여름 한 철에만 일하면 되니까 그나마 괜찮겠네요?” 그때 제가 언성을 높였지요. “모르는 소리를 하지 마시라. 겨울에 포도나무 가지를 거둬서 모으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느냐?”

  그렇게 아버지께서는 봄에 싹이 나올 수 있는 두어 마디를 남겨두고서는 사정없이 싹둑싹둑 다 잘라버리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들었던 생각은 왜 저렇게나 많이 잘라 버리실까?’ ‘몇 마디라도 더 남겨놓으면 포도송이가 더 많이 달릴 텐데.’

  보통 포도나무 한 그루에 20여 송이 정도를 달면 좋다고 합니다. 그래야 송이도 좋고 잘 익는다고 합니다. 그것보다 많이 달면 익혀 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송이는 물론이거니와 나무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런데 저희 고향 동네에 학원을 하다 그만 둔 친한 후배가 있는데, 워낙에 초보 농사꾼이라 20송이보다 훨씬 더 많이 달아놓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한 해 농사를 실패했습니다. 그런데도 다음 해에도 역시 미련을 버리지 못해 혹시나하는 마음에 또 그렇게 했다는데, ‘역시나였습니다.

 

  작년에 한맘 텃밭에 무를 심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신신당부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무는 한 구멍에 하나씩만 나와야 한다. 몇 개의 순이 나오더라도 다 놔두지 말고 한 개만 놔두고 나머지는 솎아서 나물로 무쳐 먹으라.”는 겁니다. 그런데 저 역시 초보가 아닙니까. ‘설마, 그러려고.’ ‘다 그럴까.’ 하는 마음에 두어 개를 더 남겨둔 것들이 있었습니다.

  역시나 나중에 수확할 때에 보니 고추만한 것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팔뚝만한 것은 생각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고추 크기의 무도 생각해보지 못했었는데 말이지요. 평생을 두고 농사를 지어 오신 유능한 농사꾼 어머니의 말씀을 듣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룬 것입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열매를 거두는데 있어서 가지치기와 열매솎기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원하는 열매를 거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에 유능한 농부는 어떻게 얼마나 잘라내야 하고 솎아내야 하는지를 알아 손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두고서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하셨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열매를 맺는 가지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가지를 깨끗하게 하신다(15:2b)고 했습니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유능한 농부이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로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 손을 봐주시고 계시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75세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시지요.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변방의 늙은이로 살다가 죽어가는 것을 두고만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에게 세월이 무작정 그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그냥 무턱대고 세월만 보내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어떤 모습들로서든 찾아오셔서 우리네 삶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십니다.

  75세면 인생을 정리해야 할 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나온 세월을 더듬어보면서 과거 속에 묻혀 기억과 추억을 회상하면서 살 그런 연령대입니다. 지난주에 오랜만에 구미에서 살고 있는 고향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나이가 드니까 함께 지냈었던 옛날 친구가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번 구정에는 꼭 만나서 얼굴을 보자고 합니다. 저희 나이 때도 벌써 이런 생각에 젖어들면서 옛 고향 옛 친구들이 생각이 납니다.

  제가 이 나이에도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집에 가서는 배를 깔고 누워 있으면 그렇게 편안하고 좋을 수가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객지에서 살다가도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살고 싶은 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입니다. 제 또래의 선후배들이 고향에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낮에는 포도농사를 짓고, 밤에는 서로들 모여 술 한 잔 하면서 고스톱도 치고 당구도 치면서 참 재미나게들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는 언제 올 거냐?”고 묻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 성 싶습니다.

 

  우리네 인생을 보면 대개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만 편해지려고 하는 욕구가 생겨나는 것을 느낍니다. 안주하려는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지요. 목회자의 자원 은퇴가 65세입니다. 정년이 70세입니다. 저 역시 어떻게든 이때까지 잘 버텼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우리 아이들이 돈을 잘 벌게 되면서 편안한 노후를 보냈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지난주일에 재현이가 이마트 편의점에서 알바를 마치고 3시에 교회에 왔습니다. 서로 안부와 진로를 묻는 중에 양승기 집사님이 재현이에게 그러셨습니다. “알바비 언제 받냐? 그때 한 번 만나자.”라는 말씀과 함께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되고는 한맘교회 박목사님 후임으로 오면 어떻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좋은 생각이었습니다. ‘왜 미처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러면 이 교회와 저의 노후가 너무나 안정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인 복지 쪽에 관심이 많은 재현이를 신학 쪽으로 해서 잘 구슬려 볼까. 아니면 다른 누가 있을까?’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안정적이고 편안한 노후를 생각지 않는 인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이라고 해서 그런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들 하나 같이 노후를 생각하고 준비를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생각한 대로 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그렇게 두지 않으셨지요.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 고향 산천에서 몸과 마음을 눕히지 못하도록 하시면서 그곳에서 떠나가게 하신 것입니다. 익숙해진 것에서, 편안해진 것에서 떠나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떠나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제가 쓰고 있는 컴퓨터에 악성 바이러스가 걸렸습니다. 그로 저장되어져 있는 한 글 문서가 다 깨져서 나오는 겁니다. 화요일 밤에 혼자서 아무리 해도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도 제 생각에는 언제라도 그랬으니 내일 아침에 철미씨가 손을 보면 되겠지.’ 그런데도 안 됩니다. 서울 용산 컴퓨터 상가에 있는 조카에게 도움을 구해 봐도 안 된다는 겁니다. 와전 포맷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앞이 노래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에 쌓아두었던 설교를 비롯한 온갖 자료들이 한 순간에 다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다듬어서 쓰고자 스크랩 해 놓았었던 글들을 비롯해서 한맘교회 글들도 다 날아갔습니다. 주일을 준비하려고 하니 먼저는 주보가 제일 걱정입니다. 이전에는 만들어놓은 폼에 빈칸만 채우면 되었었는데, 이제는 새롭게 틀을 짜야 했습니다. 그 작업이 많은 시간을 요합니다. 속이 상했습니다. 속이 타들어갔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나나?’ ‘왜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이때 일어나나?’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인데 말이지.

  그러는 중에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전의 것들과는 단절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의 자료들에게서 벗어나라.’ ‘이전의 생각들에서 떠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난날들 동안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던 패턴들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단계 더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설교가 좀 막히면 이전 자료를 들춰보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지요. 완전 처음부터 새롭게 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기존의 자리에서 떠나라 하시면서 새로운 환경으로 몰아넣으셨습니다. 그나마 젊은 날에는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75세의 나이에 낯설고 물선 곳에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또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당장에 본문 다음에 이어지는 사건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10절에,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그랬습니다. 고향 땅에서 기근이 들었으면 그 먼 곳 애굽까지 내려갈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내 사라가 바로가 있는 애굽의 궁전으로 이끌려 들어갔습니다. 한마디로 아내를 빼앗긴 것이지요. 고향 친척 아버지 집에 있었더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들입니다.

  아브라함을 보게 되면 딱 부러지는 성격이라기보다는 우유부단한 성격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기 아내를 누이로 속여서는 두 번에 걸쳐서 빼앗기는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지난주일에 하갈에 대해서 봤습니다만 사라가 그녀의 몸종이었던 하갈을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취하게 함으로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그런 것을 보면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의 뒤에 숨어 있었던 사람이지 않았을까.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 계보의 제일 윗자리에 그의 이름을 두신 것입니다. 2,3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그렇게 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빚고 또 빚고 빚어 가신 것입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을 빚으셨듯이 우리 또한 빚어 가시겠지요.

 

  저희 아버지 같은 경우에는 늘 그 자리에 있어봐라.’라는 주의입니다. ‘다른 데 가려고 하지 말고 어떻게든 그 자리에 있어봐라.’ 제가 엉덩이가 무거운 것은 아버지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저는 안 움직이고 앉아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익숙한 것이 좋습니다. 편한 것이 좋습니다. 신발도 오래 신어서 뒷굽이 닳은 것이 편합니다. 옷도 철마다 한 두 벌만 있어도 무방합니다.

  그에 반해서 아내는 움직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집에서 먹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에 아내는 건수가 생겼다 하면 나가서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어떤 물건이 그 자리에 있으면 몇 년이 흘러도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내는 한 달에, 일주일에, 하루에도 몇 번씩이라도 옮겨야 직성이 풀립니다. 목공일을 배우고 싶다고 몇 년 전부터 말합니다. 얼마 전에 당신, 뭐라도 배우고 싶은 것 있으면 배우라.”고 했더니 드론을 배우고 싶다.”는 겁니다. 뭐라도 해야, 어떻게든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저와는 이렇게도 안 맞는 사람을 아내로 맞아 검은 머리가 팥 뿌리가 될 때까지 살게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전에 고향이었던 김천을 떠날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곳을 떠나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살 수 없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곳에 모든 것이 다 있었습니다. 양가 부모님을 비롯해서 교회와 친구와 추억들이 다 그곳에 있었습니다. 누구든 생각만 하면 어느 시간에서든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길눈이 어두웠던 제게는 그곳이 살아가기에 가장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를 그곳에서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하시고서는 저를 포항으로 몰아내셨습니다. 처음에 제가 포항에 오고 나서 사람들을 만나니 기질적으로 저하고 너무나 안 맞습니다. 말투나 몸짓과 같은 표현들이 상당히 거칩니다. 우락부락 합니다. 그런데 집사람이 하는 말이 나는 이 포항사람들이 화끈해서 너무 좋다.”는 겁니다. 자기와는 너무 잘 맞는다는 겁니다. 저는 지금도 아내와 참 안 맞습니다.

  움직이기를 싫어하고 옮기기를 싫어하는 제가 만약 그 자리에만 있었다면 오늘의 저는 어떤 모습일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생각도 많이 커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늘 있던 그 자리, 늘 만나던 그 사람들에게서 조금도 벗어나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보는 것과 만나는 것이 늘 같은 것이었을 것이니 자라났다고 한들 얼마나 자랄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저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지 않으셨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과 만족을 감히 누려볼 수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미국 새들백 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릭 워렌목사님의 쓰신 책, ‘당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옆집에는 장미를 재배하는 전문가가 있다. 그 집 앞마당과 뒷마당은 아주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그를 우리 집 뒷마당으로 초대해 내가 키우는 장미들에게 마술을 걸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가지치기를 하는) 그를 지켜보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정원 손질용 가위를 가지고 와서는 가차 없이 가지들을 잘라냈다. 그가 내 장미 덤불들을 잘라내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아팠다. , , !! 그가 가지치기를 마쳤을 무렵, 내 장미 덤불은 그루터기만 남고 다 잘려나갔다. 나는 지금까지 죽은 가지들을 조심스럽게 잘라내는 것을 가지치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살아있는 가지들과 잎들과 꽃들까지도 잘려나가야 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이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지치기를 하실 때, 우리의 죄와 우리 삶 속에 있는 피상적이고 말라 시든 가지들을 잘라내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분은 그렇게 하신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잘 돌아가고 있는 사업과 만족스러운 인간관계와 좋은 건강 상태 같은 것처럼 살아 있는 것과 성공적인 것들도 잘라내신다.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그런 것들을 잘라내는 것이다.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 왜 이러시는 거예요. 제 사업을 하나님께 맡겨드렸는데 결국은 실패했습니다. 제 건강도 하나님께 맡겼는데 다음 주에 입원을 해야 합니다. 꼬박꼬박 십일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은 파산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더 많은 가지를 쳐내실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자초한 문제들을 비롯해서 재정적인 어려움, 갑작스러운 질병, 깨어진 가정생활, 반항하는 자녀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기타 등등. 이 모든 것들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열매를 맺어가게 하시기 위해서 가지를 쳐내실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1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이 말씀에 우리 모두는 동의할 수 있지요. 징계를 받는 것이 즐거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해서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했습니다.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 과정 속에 가지치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을 가위손 하나님으로 잡았습니다. 예전에 가위손이라는 영화를 아주 감명 있게 봤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 많으시겠습니다만 이 가위손을 가진 주인공이 손을 대는 것마다 얼마나 멋진 작품들로 탄생하는지 모릅니다. 그 손의 움직임이 망설임이 없습니다. 거침이 없습니다.

  제가 양남에서 환영이용실 집사님에게서 10년 동안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머리를 깎았습니다만 이 집사님은 얼마나 조심스럽게 깎으시는지 한 시간은 기본이었습니다만 이 가위손의 주인공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원의 나무나 동물의 털이나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을 매만져주는데, 얼마나 멋진 작품들이 탄생되는지 모릅니다. 눈 오는 날의 얼음 조각상들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가위손입니다. 어떨 때 보면 마구잡이로 다 잘라버리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계속 가다가는 아무 것도 남을 게 없어 보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실 수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뭔가 싶어지기도 합니다. ‘이 지경에 이르게 하려고’ ‘이 꼴 보려고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고 섬겼나.’ 싶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신앙인들이 혼동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지를 치시는 것인데, 그것을 형벌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고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아니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하는 화와 벌에 대해서는 이미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짊어지게 하심으로 십자가에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믿거나 알지 못함으로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고 벌을 내리셔서 자기가 고통과 고난 속에 있다고 혼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 아니지요.

 

이 즈음에서 가져보는 생각이 있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진정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아브라함을 어떻게 쓰시기 위해서 75세의 때에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게 하셨단 말인가. 먹고 살만한 편안함을 주시기 위함이었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 것이지요. 오래 사는 장수가 목적이었다면 오히려 그가 머물러 있던 자리에 있게 하셨다면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로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게 하십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발걸음을 옮기게 하십니다. 염려와 걱정,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해 올 수밖에 없는 곳으로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떠나라는 것과는 비교조차 될 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러실 수 있을까. 이 말씀은 이전에 받아들였던 말씀과는 달라 도저히 죽어도 받아들이지 못할 말씀일 수 있습니다. 이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이 정도 되면 하나님도 아브라함도 보통 미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미쳐 보이는 말씀을 하시고, 미쳐 보이는 순종의 자리까지 이를 수 있게 된 것일까?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불릴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믿은 것입니다. 죽은 태에서도 아들 이삭으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이라면 죽은 자 가운데에서도 다시 살아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은 것이지요.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11:17,19) 부활신앙까지 겸비하는 자리까지 아브라함의 믿음이 훌쩍 자라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수많은 가지치기를 통해서 자기에게 맺게 하시기를 원하셨던 열매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것이었지요. 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게 된 것입니다. 죽음 가운데에서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게 된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인생과 영생을 주관하시는 절대자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분명히 믿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삶에 개입해 오셨던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 장성한 믿음을 오늘 여러분과 저로 가져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으로 인해 내가 살 수 있음과 부활하신 주님으로 인해 내가 부활하여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가지를 쳐가고 계시는 중인 것입니다. 이것 이상은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진정한 복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요. 늙어지는 가운데에서도, 죽음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가난과 질병 가운데에서도,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눈물 가운데에서, 쓰라린 고통과 쓰디쓴 상처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늙음에서 늙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죽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 자리 자리에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예배자로 우뚝 세워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난도 질병도 상처도 눈물도 아픔도 이겨내는 것입니다. 기분이 더러운 것도, 기분이 꿀꿀한 것도, 기분이 언짢은 것도, 외로움도, 쓸쓸함도, 허전함도, 서러움도 이겨내는 것이지요. 두려움도 불안도 공포도 이겨내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자연인을 두고 진행하는 윤택씨가 한 분과의 만남을 끝으로 마지막 클로징 멘트로 그럽니다. “나는 여태까지 자연인만을 만나왔는데, 이번에는 정말 진짜로 자연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말이 너무 인상적으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는 나는 신앙인이다에서 우리는(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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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우선 순위가 중요합니다. 박정철  2018-11-11  한맘교회당  19
17 날마다 개혁되어져야 합니다(종교개혁주일) 박정철  2018-10-28  한맘교회당  25
16 시가 흐르는 시월 박정철  2018-10-21  한맘교회당  21
15 이 사람도 박정철  2018-08-26  한맘교회당  23
14 가시나무에 깃든 은혜 박정철  2018-07-08  한맘교회당  35
13 잘 사는 삶 박정철  2018-07-01  한맘교회당  40
12 평화와 번영의 길 박정철  2018-06-24  한맘교회당  34
1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박정철  2018-06-17  한맘교회당  42
10 먹든지 마시든지 박정철  2018-05-27  한맘교회당  50
9 내어주는 사랑의 마음(어버이주일) 박정철  2018-05-13  한맘교회당  37
8 누가 크냐?(어린이주일) 박정철  2018-05-06  한맘교회당  44
7 어떤 하루 박정철  2018-04-29  한맘교회당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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