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민족과 함께

이사야 61:1-3; 로마서 8:24, 31-35; 마태복음 5:9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FOR PEACE OF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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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THE PRESBYTERY IN THE REPUBLIC OF KOREA!

박정철 2019-02-08 12: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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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철 
설교일 2019-02-10 
설교장소 한맘교회당 

봄이 와 있습니다(4:26-29)한맘

 

  며칠 전 한낮의 겨울 햇살에서 봄의 기운이 감지됩니다. 이제는 겨울 외투가 무겁게 느껴지는 날들입니다. 밤에 와서 본당에서 기도를 하는데, 강대상 앞에 장식으로 멋있게 서 있으면서 허세를 부리고 있었던 두 친구가 겨우내 서 있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그만 쉬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겨울에 보자고 하면서 보내주었습니다.

  겨울 외투가 무거워지는 때면 어김없이 제 입에서 흥얼거려지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 (그리고 이 부분에서 목소리가 아주 커집니다.) 건넌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 주

  이 노래를 부르면서 부푼 마음을 안고 뒤뜰로 갔습니다. 봄이 얼마만큼 왔나 보고 싶었습니다. 가서 봤더니 봄까치꽃이 벌써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꽃과 함께 냉이가 몇 뿌리 자라나는 것을 봤습니다. 한 움큼 정도 뜯어서는 아내가 끓이는 국에다가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식구들 밥 위에 두어 뿌리씩 얹어주었습니다. 적은 양이었지만 그래도 봄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때 이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주일 점심 메뉴는 냉이 달래 된장국이다.’ 봄내음을 가득 품은 냉이와 달래를 넣어서는 구수하고 향긋한 된장국을 끓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지금 주방에서는 이 냄새가 풍겨나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사람이 밥 한 끼만 거뜬히 먹어도 사는데 힘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점심을 준비하고 대접하면서도 그 마음으로 하실 것이라 압니다.

  한 번의 설교를 통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의 눈맞춤이 인생에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모릅니다. 한 번의 토닥여주는 그 손길이 얼마나 긴 여운을 가져다주는지 모릅니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을 그윽한 눈빛 속에서 이해할 수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든 것에 있어서 한 번을 대충 때워가는 식이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제가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단지 추위만 지나기를 바랐던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 중의 큰 것이 바로 봄나물의 향연을 교회 식탁에서 함께 누리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몸에도 좋은 것이 우리네 공동체 구성원들의 모든 삶과 영을 살찌울 것이니 그 기쁨을 맛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봄이 되면 춘곤증이 생겨납니다. 겨울에 몸을 많이 안 움직이고 움츠렸었는데, 봄이 되어 신진대사가 왕성해지지요. 한의사에 따르면 양기가 올라오는 봄에 식물들도 싹과 잎이 돋아나듯이 사람의 몸에도 기운이 올라가는데 비해 체력이 그에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에 춘곤증이 생각난다고 합니다. 계절 변화에 신체가 적응해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합니다.

  그래서 이 춘곤증을 이겨내려면 냉이와 쑥과 같은 신선한 봄나물을 식탁에 자주 올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냉이는 채소 중에서도 단백질 함량이 가장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칼슘과 철분, 비타민 등을 두루 함유하고 있습니다. 쑥과 돌나물 같은 효능에 대해서도 많이 적혀져 있습니다만 더 이상은 설명을 안 드려도 될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 참 좋은 것을 말로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들이 곳곳에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이 자연 만물을 허락해 주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당신의 섬세한 손길을 경험하게 하시니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찾아온 봄과 함께 우리의 몸과 영혼도 기지개를 활짝 펴면서 깨어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네 영혼에 햇빛이 비치는 봄날이어서 항상 기쁘고 감사가 넘쳐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가 여기 한맘에 오면서 땅과 씨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란 곳도 농촌이요 이전까지 있었던 곳도 농촌이었지만 그간에는 사실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작은 것이지만 그래도 직접 뿌리고 심고 거두다 보니까 땅과 씨가 얼마나 위대하고 엄청난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시면서 너무나 쉽게 말씀해 주십니다. 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그랬습니다. ‘,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이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리는 것과 같은 것이구나!’ 전혀 어렵지가 않습니다. 시골 노인네나 아낙네라 하더라도 알 수 있는 평범한 진리입니다.

  풀을 매고 뽑다 보니까 씨가 참으로 무섭다는 것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지난 해 늦가을까지 한맘정원의 풀 뽑기 작업을 한 시도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잔디 사이사이로 올라오는 풀들을 뽑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작년 봄에 보니까 따스한 봄 햇살에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으면서 물을 머금은 풀들이 올라오는데 어찌나 많은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뽑고 또 뽑아도 다 뽑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는 한 해를 보내면서 나름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늦가을에 어느 정도 풀을 제거해 놓으면 다음 해 봄에는 그나마 수월할 것이라 여긴 것입니다. 그 생각을 좋게 여겨서 늦가을 찬바람이 부는 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쪼그려 앉아서는 몇 날이고 풀을 맸습니다. 누가 보면 어리석고 미쳤다고 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내 나름으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매일 어느 정도씩 해서 구역을 정해서는 다 맸다고 여겼었는데, 기쁨도 채 누리기 전에 또 먼저 맨 그 자리들에서는 깨알 같은 풀들이 자라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풀들이 다시 올라오는 것을 보니 괜한 오기가 발동을 합니다. 그렇게 고생을 해가면서 세세히 매고 또 맸건만 다시금 올라오는 풀들을 그냥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는 또 한 번 마음을 다잡고서는 풀들을 매기 시작했습니다. 다 매고 나서는 이젠 됐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니나 다를까 또 그 자리에서는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또 다른 풀들이 메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 모습을 두고 보던 이웃집 아저씨가 안쓰러운 듯 한 말씀을 하십니다. “목사님, 그 풀들을 그냥 놔두이소. 사람이 못 이깁니다.” 결국에는 손을 놓게 되면서 겨울을 맞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겨울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입춘이 지나면서 봄의 기운이 어느 정도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생각이 꿈틀거리는 겁니다. ‘아이고야, 곧 풀들이 꿈틀거리면서 자라나겠구나!’ 올해는 또 얼마나 많은 풀들이 올라오게 될는지 우려스럽고 끔찍스럽습니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그 자리에서 보내야만 하는 것일까.

  설교를 준비하다 보게 된 자료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가로 세로 50cm의 땅 속에는 약 2만 개의 씨앗들이 들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한꺼번에 피어나지 않는다. 봄이 오면 지천으로 냉이가 있지만 피어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면적에는 약 100포기의 냉이가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장소에서는 무려 열매가 4만 개, 씨앗의 수는 120만 개에 달한다고 한다. 120만 개의 씨앗 중에서 약 100포기 정도만 싹을 틔운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 씨앗은 죽은 것인가. 아니다. 때가 되면 피어날 것이다.’

  이 글귀를 읽으면서 까무러치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싶습니다. 싸워서 이기지 못할 싸움을 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한 것을 생각하니 허탈해지기도 했습니다. 비단 냉이만 그런 것이 아니지요. 무수한 종류의 씨앗들이 그 땅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자신의 때를 기다렸다가 올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풀씨만 그런가? 모든 씨앗들이 다 그렇습니다. 이번 명절에 고향집에 가서 화장실에 뿌리 씨앗들을 어머니께서 준비해 둔 것이 보입니다. “뭐냐?”고 물었더니 토란뿌리다.” 하십니다. 토란은 씨앗으로 뿌리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심어서는 연꽃처럼 쭉쭉 뻗어서는 자라는 것이라 하십니다. 민들레와 함께 택배로 보내주시기로 약속을 하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즐겨 불렀던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복음을 심었습니다. 복음이 싹이 났네요. 복음이 자랐습니다. 30(60, 100) 맺었습니다.’ 복음이 씨앗입니다.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주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말씀도 씨앗입니다. 그 씨앗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통해서 이미 가르쳐주고 계시지요. 뿌려놓으면 싹을 틔우고 자라면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식물의 씨앗이 한 겨울의 동토 가운데에서도 죽지 않고 자신의 때를 기다렸다가 피어나는 것처럼 복음의 씨앗 역시 아무리 얼음장 같은 심령이라도 때가 되면 싹을 틔어 자라나면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르침을 생생하게 가르쳐주시기 위해 이 자연을 통해서 일깨워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면서 찬송으로 부르게 하십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126:6) 했습니다. ‘비가 오는 것과 바람 부는 것을 겁을 내지 말고 뿌려 봅시다 / 일을 마쳐놓고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씨를 뿌릴 때에 나지 아니할까 / 염려하며 심히 애탈지라도 / 나중 예수께서 칭찬하시리니 /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아멘.

  이렇게도 말씀하시지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했습니다. 우리가 좋은 일을 하고 선을 행할 때에 낙심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다 거두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흘린 눈물과 땀과 피와 진심을 결코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거두게 하십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순리와 질서의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자신이 심은 대로 다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물질적이고, 육신적이고, 이기적인 씨앗을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게 됩니다. 반면에 성령을 위하여 거룩하고 진실한 씨앗을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 늦가을에 심어놓았던 것들이 있습니다. 시금치와 상추, 그리고 대파, 양파와 마늘을 심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서 찬바람이 불어오는 때면 쫓기듯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그 작물들을 대합니다. 그러면 괜히 안쓰러운 생각도 듭니다. ‘내가 나 좋다고 저들로 괜한 고생을 시키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속으로 주문을 외우듯 속으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버텨다오.” “조금만 더 버텨다오.” “새 봄이 오는 날 내 너를 마음껏 내 입과 위에서 품어 주리라.”

  그 작물들을 보면서 놀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것들이 죽지 않고 살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자라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죽지도 않는다는 것이지요. 인내를 가지고 겨울 그 추운 때를 버텨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얼마 있지 않으면 그 작물들이 주일 점심 메뉴로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면서 저들의 존재를 드러내 보여줄 것입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자의 위대한 자태를 저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지요. 저들에게서 침묵을 배우고 고요를 배우고 인내를 배웁니다. 저들이 동면의 상태를 거치는 동안의 과정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닙니다. 묵묵히 자신의 때를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아무 것도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자신들을 지켜가고 있는 중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저들에게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가 떠오릅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슬픔의 날을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그랬습니다.

  푸시킨이 추운 겨울 어느 날 모스크바 광장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한 맹인을 보았습니다. 그 구걸하는 맹인이 한 겨울인데도 얇은 누더기 한 벌만 걸치고 있었습니다. 광장 구석에 웅크려 벌벌 떨면서 굽실거리고 있습니다. “한 푼만 주십시오. 얼어 죽겠습니다.” 그때 푸시킨이 다가가서는 말합니다. “나 역시 가난한 형편이라 그대에게 줄 돈이 없네요. 대신 몇 글자를 써주겠으니 그걸 몸에 붙이고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며칠 뒤, 푸시킨이 다시 친구들과 함께 모스크바 광장을 찾았습니다. 그 맹인이 친구들과 나누는 푸시킨의 목소리를 알아듣고서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며칠 전 나에게 종이에 글씨를 써 준 분이군요. 그 종이를 몸에 붙였더니 깡통에 돈이 제법 쌓였어요. 그 날 써 준 내용이 무엇인지요?” 그때 푸시킨이 대답합니다. “‘겨울이 왔으니 봄도 멀지 않으리라.’고 썼습니다.”

 

  구정을 맞이하기 며칠 전에 어느 분에게서 선물과 함께 카톡 메시지가 왔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주를 위해 수고한 사람에게 복 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 글귀를 받아들고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그 글귀를 다 받아내기에 참으로 부족하고 부끄러운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그 글귀가 너무나 큰 힘으로 작용을 했습니다.

  ‘그래, 지금의 삶이 비록 눈보라 치는 겨울 한 복판일 수 있지만 생명의 하나님께서 새 봄을 허락해 주실 것이니 비겁하지 말자. 회피하지 말자. 때가 되면 그 날에 따사로운 봄볕을 허락해 주실 것이니.’ ‘이제 내게 주신 따사로운 봄볕을 가지고 아직까지 추운 겨울을 살아가고 있는 자들에게 나눠주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되겠다.’

우리들 가운데에도 힘이 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육신의 장막을 걸친 자가 힘이 들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요. 고통스러울 때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소망의 하나님께서는 힘든 그 순간에도 그 순간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우리네 인생들이 눈물을 흘릴 때가 많지만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닦아내 주십니다. 한숨을 쉴 때가 많은 우리네 삶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한숨을 거두게 하십니다. 넘어질 때가 많은 우리들이지만 그 넘어짐에서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믿음을 가진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힘든 곳에서도 살아낼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서 주시지요. 이번 명절 때에도 저를 만나는 이들이 많이들 묻습니다. “아니,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 그러면 제가 아주 또박또박 말합니다. “내 생애에 있어서 작년보다 더 풍성할 때가 없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오면서 진짜 사는 것처럼 산다.” 그러면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참 대단하다.’ ‘, 또라이 아냐.’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새봄에 새파란 싹들이 온 천지에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어느 순간에 그리되고 말 것입니다. 27절에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어느 순간에 훌쩍 자라나 있는 것이지요. 명절 날 가끔씩 보게 되는 아이들이 저보다 훨씬 더 자라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씨를 자라게 하시되 단계별로 자라게 하십니다. 갓난아이가 태어나서 성숙한 어른이 되기까지도 과정이 있습니다. 유아기가 있고, 아동기가 있고, 청소년기가 있고, 청년이 되고, 장성하여 어른이 됩니다. 그러다 노년기가 따르지요. 저희 아버지께서 고향 동네에서 노인회장을 몇 년간 맡고 계십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아버지, 노인회장 계속하십시오. 저도 좀 있으면 노인회 회원으로 가입할게요.”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고 했습니다. 씨가 자라서 곡식이 되기까지 반드시 일정한 과정을 거칩니다. 처음에는 싹, 다음에는 이삭, 그 다음에는 곡식, 그 다음에 추수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이기 때문에 어길 수가 없습니다. 건너 뛸 수도 없습니다.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조급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키우실 것을 믿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때와 자리가 어느 단계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싹이 나게 하셨으면 이삭을 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 어떻게 가게 하실지 다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여기까지 오게 하셨으니 성장과 성숙한 모습으로 다음 거기 그 자리에 이르게 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오늘 이 자리에서 버티고 견디어 갈 수 있는 힘과 용기로 주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 교회와 저의 모습이 어떻게 펼쳐지게 될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제가 이 교회를 생각하는 것보다 주님께서 이 교회를 더 많이 생각하고 계신다는 것이지요. 내가 내 자신을 생각하는 것보다 주님께서 나보다 나를 더 생각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분들에게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위하고 아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 밑에 보면 겨자씨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 있지요. 30절 이하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했습니다.

  전도사 때에 교회학교 어린이들과 목청껏 불렀던 노래가 있습니다. ‘겨자씨 작은 알이 땅에 떨어졌을 때 /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죠 / 보잘 것 없는 작은 겨자씨 한 알 쯤이야 / 바람도 산새도 무심했었죠.’

  저희가 처음에 이 한맘에 왔을 때가 꼭 이랬던 것 같습니다. 한 알의 작은 겨자씨가 칙칙한 땅 속에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캄캄한 흙 속에 파묻혔다는 생각에 너무나 답답했습니다. 숨조차 제대로 쉬기가 어려웠습니다. 처음 그때에는 알 바를 도대체 모르겠고 갈 바를 모르겠고 될 바를 몰랐습니다.

  그때는 나도 죽고 교회도 죽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내 자리가 진정 아니었던가.’ 싶은 생각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기도 한 줄이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예배 시작 몇 분 전까지 교회당 바깥이 보이는 창문 쪽을 얼마나 하염없이 속절없이 바라봤는지 모릅니다. ‘누가 오나?’를 지켜봤습니다. 그 순간은 환한 대낮임에도 캄캄한 어둠 속 같았습니다. 하늘과 숲과 나무는 푸르렀는데 제 마음은 잿빛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턴테이블에서 감성적인 노래를 틀어놓고서는 차와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서는 한맘 카페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여러분들로 인해서 정말이지 얼마나 감사와 여유가 넘쳐나는지 모릅니다.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편 126편의 말씀에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말씀이 오늘 저를 위한 말씀 같습니다.

  전도사 시절에 아이들과 함께 불렀었던 노랫말 4절 가사입니다. ‘겨자씨 작은 알이 땅에 떨어졌을 때 / 바람도 산새도 무심하더니 / 이제는 지나가던 바람도 쉬었다 가고 / 새들도 모여들어 둥지를 틀죠 /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아서 / 생명 있는 나무로 자라납니다.’

 

  2019년을 또 하나님께서 기대하게 하십니다. 또 어떤 것들로 생각과 삶을 채워주실지 기대하게 됩니다. 지금껏 보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자리들로 충분히 알아가게 하시고서는 다음으로 생각과 삶을 열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얻어가게 하신 후에 다음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봄에 무엇을 심을지 겨우내 생각해 두었던 것들이 있습니다. 작년에 받아놓은 씨앗들이 좀 있습니다. 뿌리기 전에 돌도 걷어내고 퇴비도 주고 해야 될 것입니다. 흙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것이지요. 흙 속에 공기가 들어가게 하고, 미생물들이 들어가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작은 텃밭에 뿌려질 것들을 위해서도 준비가 필요할진대 하물며 우리 인생의 길고 긴 밭에 무엇을 뿌리고 심을 것인가. 여러분들 역시 이미 와 있는 이 봄에 무엇을 뿌리고 심을지를 이미 다 생각해놓고 준비해놓고 계시겠지요. 뿌린 자들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교회 목사님 내외분이 오셨을 때에 점심을 대접하면서 제가 직접 기르고 장만한 치커리 장아찌를 자랑하면서 내어놓았더니 마지못해서 그런지 너무 맛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너무 뿌듯합니다. 그래서는 저의 약점이 노출되었습니다. 그만 그간에 말려서 장만해 두었었던 무, 가지, 호박, 망개 뿌리를 주고야 말았습니다. 그래도 주는 기쁨이 커서 수고한 고생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미 보상을 받은 것이지요.

 

  이미 봄은 우리 삶에 와 있습니다. 이 봄날에 무엇을 뿌리고 심을 것인가. 뿌리고 심은 것들을 얼마나 거둘 것인가. 거두어들인 것들을 누구와 얼마나 나눌 것인가.

 

33 지어져가야 할 성전
32 살다 사랑하다
31 하나님의 모성애
30 어머니 품에 안긴 아기 같이
29 베풂 속에 담겨 있는 즐거움
28 보여지는 부활 생명
27 다 이루신 예수님 +2
26 하늘 문 자리
» 봄이 와 있습니다
24 가위손 하나님
23 2019년도 한맘녀
22 왜 마리아여야 했을까?(대림절 셋째 주일)
21 사랑으로 세워지는 정의(대림절 둘째 주일)
20 주님이 통치하는 나라
19 쉼이 있는 터
18 우선 순위가 중요합니다.
17 날마다 개혁되어져야 합니다(종교개혁주일)
16 시가 흐르는 시월
15 이 사람도
14 가시나무에 깃든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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