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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든지 마시든지

2018.05.26 21:17

박정철 조회 수:40

설교자 박정철 
설교일 2018-05-27 
설교장소 한맘교회당 

먹든지 마시든지(고전 10:23-33)

 

  제 혈액형은 O형입니다. 소심한 O형입니다. 소심한 O형인데다가 50대 갱년기 증상까지 합쳐져서 그 정도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너무 잘 삐지는 것이지요. 저는 같이 사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을 하는 반면에 같이 사는 사람들은 저 때문에 아주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아내가 차를 타고 가다가 가게에 들러서는 아이들에게는 이것저것 사 주면서도 저에게는 바나나 우유 한 번 안 사준 것으로 해서 삐지는 바람에 자동차 안의 분위기가 아주 살벌했던 적이 있습니다. 요새는 그 우유를 잘 사 줍니다.

  그래도 그마나 다행인 것은 그 소심함과 삐짐이 오래가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몇 날 며칠, 몇 달까지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만 저는 그래도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그것은 아마 제 혈액형이 O형인 동시에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의 피인 C형까지 합쳐져서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그게 참 감사하지요. 말씀과 기도로 그나마 털어내고 돌아설 수 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몇 달 몇 년까지도 갔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들 C형이지요. 한맘교회 성도들은 커피의 ‘C’자까지 겹쳐졌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내 태어난 본성의 성깔대로 사는 이들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사는 이들입니다. 성령으로 성깔을 이기면서 살아가는 이들이지요. 우리가 살면서 싸우지 않고 살 수야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화평이신 주님을 믿음으로 그 싸움을 빨리 끝내고 화해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 주일이 5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교회 가족에 대한 것으로 말씀을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주일에도 예배 후에 식사와 함께 공동체 나눔을 통해서 아주 신나게 웃었습니다. 밴드에서 보니까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정도였던 이연숙 집사님이 너무 웃다 보니까 어질어질해서 산소호흡기 하나 있어야 되겠다고 했습니다. 양승기 집사님도 한 마디 곁들었지요. “목사님, 아마 초대교회가 이러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우리가 하나가 되어 신나게 웃고 떠들면서도 서로에 대한 배려로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행복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내심 어쩌면 이런 생각들을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더 많이 오면 이제 어떻게 되지.’ ‘사람들이 많이 오면 지금처럼 즐겁고 좋을 수 있을까.’ ‘그러면 안 되겠지만 더 안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전도를 꺼리시고 계시지는 않을까?

  그럴 수 있습니다만 우리가 먼저 터를 잘 닦아놓으면 그 어떤 이들이 몰려온다 할지라고 좋을 수 있겠지요.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 결혼을 해서는 신혼 때에도 좋습니다만 자식들을 놓고 알콩달콩 미운 정 고운 정 들면서 살아가는 것도 좋은 일이지요. 우리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성숙해갈 때에 주님께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또 다른 기쁨과 행복을 선물해 주시겠지요. 이전보다 이후를 더 풍성하게 열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이런 걱정과 염려까지 벌써부터 해가게 하시는 하나님께 정말이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어서 주일에 교회당을 찾는 발자국 소리가 복음처럼 들렸었는데, 이제는 그 발자국들이 더 많아지면 어떻게 될지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요새 교회당을 안팎으로 둘러보면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그런 마음입니다. 불과 10달 전까지만 해도 주위에서 저를 보는 시선들이 불쌍함이었다면 이제는 그 시선이 부러움으로 바꾸어져 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습니다만 저는 교회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밥 같습니다. 이 밥을 평생 동안 먹어가면서 건강하게 지내올 수 있었던 것처럼 이 교회를 통해서 지금까지 영육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왔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오늘 이 자리에서 교회 언니야, 오빠야, 여동생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이 나고 힘이 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 같이 이 교회에서 지금까지 꾸었던 꿈들이 이루어지고, 앞으로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기 이 교회에서 내가 살아갈 이유를 찾고, 인생의 방향과 길을 찾고 의미와 가치를 분명히 확증 받을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계속해서 깊어지고, 싱긋이 웃어주는 여유와 배려해주는 마음, 한 심령 한 심령을 위해 기도해주고 품어주면서 마음의 지평을 넉넉하게 넓혀가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는 자리가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강권적으로 역사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 자신이 개척했었던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서신입니다. 이 본문은 교회가 교회로서 온전히 세워지게 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었었던 음식에 관한 부분을 다뤄주고 있습니다. 그 음식이 무엇이냐?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었던 음식이 시장으로 나왔었는데,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 사도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한 번은 교회당 뒤편에서 보니까 언덕배기에 두 그루의 나무가 비스듬히 누워 있습니다. 가서 봤더니 여러 넝쿨에 휘감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낫을 가지고 그 넝쿨들을 다 제거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똑바로 서서 잘 자라고 있습니다. 가서 볼 때마다 그 나무들이 저에게 그러는 것 같습니다. ‘고마워, 잘 자랄게.’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문제에 있어서 그 교회에서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쪽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니까 신앙인으로서 먹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고, 다른 한쪽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가진 성도들이 그런 것에 매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구약의 율법적인 틀에 잡힌 부류의 사람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은 먹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물을 먹는 이들을 두고서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는 자유분방한 세속주의자 같은 자들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에 비해서 다른 반대쪽 사람들이 보기에 아직까지도 율법주의에 사로잡힌 고리타분한 자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이 서로 교회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으르릉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 꼴이 말이 아니지요. 사사건건 물고 늘어져 보십시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집안에서 부부가 서로 싸워보십시오. 집안이 말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밥도 못 먹고 꾀죄죄해서 학교에 갈 판입니다. 이렇게 넝쿨이 교회 나무를 감아 올라서는 질식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이 낫을 가지고 넝쿨을 잘라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기에 다 선하다고 말해줍니다. 먹어도 된다는 것이지요. 25,26절에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묻지 말고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누구라도 , 그것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인데, 어떻게 먹을 수 있느냐?”라고 한다면 그를 위하는 마음에 그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을 수는 있지만 여전히 양심에 거리낌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실족하여 시험에 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더 그럴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있으면 일부로 더 먹는다. 봐라.” 하면서 오도둑 우두둑그것도 그 사람을 보면서 잘근잘근 씹어서 먹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요.

  바울은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로 자유함을 가진 이들이 무엇이든 먹을 수 있지만 그래도 양심에 거리끼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하는 마음에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23,24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적인 지식으로는 설사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지식이 있어야 되지요. 그렇지만 그 지식만을 가지고서 신앙생활을 하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지식에 사랑이 더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유익이 되고 교회에 덕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어떤 지식이나 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보다 정확한 논리나 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배려와 용납인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바울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느 기독 서적을 읽는데, 이런 글귀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요새 기독교보다 불교 쪽을 더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기독교는 교리 이야기를 하는 반면에 불교에서는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불교 쪽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반적으로 보면 교회에서 지식이나 교리 때문에 갈등을 겪고 분열을 겪는 것이 아닙니다. 긍휼과 사랑이 곁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예전에 기장 총회 게시판에 뭐 이런 목사가 다 있어!’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대로 한 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봄이 되어 교회당을 수리할 일이 있었다. 건물 전체를 방수하기로 하고 업자를 수소문하여 일을 맡겼는데, 좀 더 세밀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공사 도중 방수액이 바람에 날려 주위의 차량에 날려 와 주인들이 항의가 들어왔다.

  그래서 업주와 보상하기로 하고 타협을 보았는데, 한 젊은이만은 꼭 목사와 담판을 지어야 하겠다고 한다. 만나 대화하는 중에 우리는 업자에게 맡겼다는 것과 책임을 물으려거든 업주에게 가서 항의 하라고 정중하게 논리 정연하게 타일러 주었다. 그랬더니 이 젊은 사람이 자기는 교회를 걸고 법으로 하겠단다. 그래서 하려면 해보시지.’ 이렇게 한 마디 거든 것이 화근이었다. “‘뭐 이런 목사가 다 있어.’ 하고, 예수나 팔아먹고 사는 주제에 이렇게 대하면서도 신자들한테는 서로 사랑하라고 설교 하겠지.” 별의 별 소리가 그 젊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법으로 하겠다며 나가더라는 것이지요.

  그 젊은 사람이 나가는 것을 본 이 목사님의 생각에 성령께서 이런 깨달음을 주시더랍니다. ‘네 말은 잘못 한 게 없다. 그러나 넌 오늘 실패를 저질렀다. 한 통의 식초보다 한 방울의 꿀로 더 많은 파리를 잡을 수 있다는 진리를 왜 기억 못했느냐? 오늘 만난 그 사람은 이론가로서의 목사보다는 자애로운 섬기는 자로서의 목자를 보기를 원하였던 것이 아니더냐?’ 그 감동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부족했던 모습을 크게 뉘우쳤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말로서 사람들을 이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애로운 섬김의 모습을 통해서 저들을 이겨야 합니다. 내가 할 말을 하고 그 말이 맞다고 해서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논쟁을 해서 유익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논쟁은 해서 이겨도 문제고 져도 문제입니다. 논쟁으로 상대방으로부터 더 이상 말 한 마디 못하게 꼼짝없이 만들어 놓았다고 해서 그들이 달라지고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의 문만 더 굳게 닫을 뿐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 십자가는 묻고 따지는 곳이 아니지요. 묻어주는 곳입니다. 다그치고 몰아세우고 내치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 교회는 풍비박살이 되고 맙니다. 묻고 따지면 보험에도 들지 못합니다. 만약 주님께서 묻고 따진다면 그 어느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묻고 따지면 자녀들이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지요.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이전의 몇몇 교회들을 거치면서 정말 힘들었고 싫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당회나 제직회를 할 때였습니다. 그 시간들이 다가오면 머리가 찌근찌근 아프고 심장이 벌렁벌렁 거릴 정도였습니다. 그 시간을 맞기 전에 이미 진이 다 빠져버립니다. 그때 보면 서로들 자기주장이 너무 강합니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습니다. 기 싸움이 대단합니다. 아주 팽팽합니다. 자기주장을 말할 때에 받게 될 상대방의 상처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교회는 완전히 상처투성이입니다. 끝나고 나면 누군가 그럽니다. “, 이제 교회 안 나가겠다.” “, 이제 다른 교회로 옮기겠다.” 이런 회의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회의 전에 그런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의 주장을 말하지 말고, 주님이라면 어떤 말씀을 하실지 말씀하십시오.” 그랬더니 덜 싸우더라는 것입니다.

  지지난주에 알고 지내던 집사님이 이 교회에 다녀가셨습니다. 그때 제가 농담 삼아 그랬습니다. “집사님, 우리 교회 슬로건이 뭔지 아십니까?” “싸우지 말자.”입니다. 싸우지만 안 해도 교회는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가 새겨들어야 될 말씀이 있습니다. 23,24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교회에는 회초리가 있고 기둥이 있습니다. 회초리는 말 그대로 잘못한 것이 있으면 때리는 도구입니다. 수탉이 병아리를 쪼듯이 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연약한 자들은 그 쪼는 매를 못 이깁니다. 그렇지만 기둥은 받쳐주지 않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회초리가 될 것이 아니라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무거운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과 같은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교회를 받치는 야긴과 보아스처럼 큰 기둥이 되어지길 원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주부 작가인 미우라 아야꼬여사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녀의 이름이 알려지기 전에 그녀는 실제로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매우 어려운 가난한 가정 주부였습니다. 이렇게 생활이 어렵다보니 적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조그만 구멍가게 하나를 차렸습니다. 그리고는 오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면서 친절히 봉사한 결과 점점 장사가 잘되었답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트럭으로 물건을 들여와야 할 정도로 가게가 잘 되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자기 아내가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안쓰러운 마음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가게가 이렇게 잘 되는 것은 좋지만 이 주위에서 사는 사람들이 다 어려운 사람들인데, 우리로 인해서 다른 구멍가게들이 안 되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 부인이 그 말을 듣고는 자기의 가게의 물건을 줄입니다. 심지어 어떤 물건은 아예 갖다 놓지도 않았습니다. 손님들이 없는 물건들을 찾을 때에는 그 물건은 저 가게에 가면 있습니다.’ 하고는 손님을 보내주기도 합니다. 이러면서 그녀에게 시간이 좀 생기게 됩니다. 그 시간에 틈틈이 글을 씁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소설인 빙점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저 돈만 벌고 자기만 살겠다고 바동거리는 그 삶에 무슨 심오한 생각이 자리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창작의 능력이 생겨나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니 비록 구멍가게를 하면서도 그녀의 마음에는 심오한 영감이 있어서 좋은 작품을 내어 놓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이 멋진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우선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을 배려하고 돌아보고,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인생도 멋진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학창 시절에 동네에서 또래들끼리 함께 모여서는 야구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타석에 서서는 투수의 공을 아주 잘 받아쳤습니다. 맞는 순간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멀리까지 날아가는 공이 하필이면 제 친구 가슴 앞으로 정면으로 가는 것입니다. ‘에이, 죽었구나!’ 싶었습니다.

  그 실망하는 찰나에 그 친구가 손을 약간 벌려서는 놓쳐주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누구보다도 똑똑히 보았습니다. 충분히 잡아서 아웃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로 공을 빠트려 주었던 것입니다. 만약 저 같았으면 그 친구가 친 공이라도 악착같이 달려가서 잡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저와는 달랐습니다. 그게 지금까지도 제 뇌리에 훈훈한 정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날 주루 플레이를 하면서도 내내 고마웠지만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기쁨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33절에 나와 같이 모든 일에(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목적은 오직 구원에 있지요. 모든 일에 있어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을 먹든지 마시든지로 잡았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먹고 마시는 것은 아주 기본입니다. 가장 기초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기초적인 것에 있어서까지 자기의 유익이나 자기의 기쁨을 삼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런 것에 있어서까지 남을 배려하고 그들의 유익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바로 남의 유익과 공동체의 기쁨을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전 교회에서 보니까 그래요. 밥을 먹을 때 주걱과 국자를 가진 사람이 자기와 친하면 좀 더 얹어주고, 자기와 좀 껄끄럽다 싶으면 건너뛰었나 봅니다. 설마 먹는 것 가지고 그랬겠느냐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만 그래도 그 당사자는 그게 못내 서운했던지 그 다음 주부터는 아예 교회를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런 교회는 못 다니겠다는 것입니다. 집사람이 아이들에게는 이것저것 사 주면서 제게 바나나 우유를 사다주지 않음으로 해서 내내 얼마나 서러웠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라도 작은 것 하나에 있어서까지 서운하게 하거나 섭섭하게 하거나 서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어린아이 하나를 두고서, ‘이런 자 하나에 있어서까지 실족하게 한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서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32절에서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그랬습니다. ‘거치는이라는 말은 걸림돌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하는 말 한 마디, 행동거지 하나가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게 있어서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그런 말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돌 하나가 개구리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되고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위에서 보면 이렇게 저렇게 교회에서 상처를 입은 이들이 많습니다. 시험에 들어 실족해서는 교회를 떠난 이들이 제법 있습니다. 세상에서 상처를 입은 이들이 교회로 찾아들어 양 집사님 말씀처럼 그 상처가 치유가 되고 그 심령이 회복되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교회에서 상처를 입고서는 세상으로 떠나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세미나에 갔더니 강사가 그래요. 요즘 천주교에서 열성분자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개신교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떠난 이들이 천주교에 많이 갔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아주 열심을 다해서 주일 성수도 잘 하고, 봉사 생활도 잘 하고, 헌금 생활도 잘 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천주교로 가는 바람에 천주교가 아주 많이 변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분들이 이제는 천주교로 가지 말고 우리 교회로 왔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봅니다. 그럴 수 있도록 오늘의 말씀이 우리 교회에 아주 뿌리 깊게 박힐 수 있어야 하겠지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우리 교회에는 물 긷는 무수리들과 고기 잘 굽고 커피 잘 타는 머슴들이 많아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몸종으로서 손수 솔선수범하면서 애써 가시는 분들이 많아서 너무 좋습니다. 설거지를 하고 싶어도 다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커피를 내리고 싶어도 기다려야 합니다.

며칠 전에 제가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면서 집사람에게 그랬습니다. “, 잘하지.” 그랬더니 잘하는 사람 천지더라.” 그래요. 우리 교회 남자 집사님들을 보고서는 저보다 더 잘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입니다. 우리 집사님들처럼 되기 위해서 더 분발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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