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를 보았습니다. 영화는 대조되는 두 청년의 인생여정을 끈질기게 추적합니다. 마침내 두 인물 정몽규와 윤동주의 내면과 현실 대처를 그려내면서 관객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들을 기억하라!"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러한 풍경이 좀 불편했습니다. 우리의 시민의식이, 우리의 민족의식이 “얼마나 높은가?”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토리가 슬퍼서, 화면이 애처로워서 배설하듯이 울고 나면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 너무 뻔히 보였기 때문일까요?
경상도식 악센트가 친숙한 사투리를 쓰는 이들과 나란히 앉았으나 우리의 만연된 정서, 가진 자에게 굽실거리며 약한 이들에게 고압적이며, 권력 지향적이고 수구적인 이들의 사고 체제가 체한 듯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4.13총선 이래로 울화가 냉소로 변한 듯합니다.
우리가 한가하고 발칙한 상상을 하는 동안, 남도 각각의 지역들은 이 좁고도 좁은 땅을 다시 쪼개고 나누고, 편을 가르고 우열을 시험합니다. 서로 제 잘났다고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 옛날 기와지붕의 장식 따위를 비유삼은 것처럼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악행을 진멸하지 못해, 총한 번 제대로 들고 나서지 못해 한스럽다’던 몽규의 절규가 거듭 귓전을 때립니다. 시와 문학으로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던 동주의 마지막 일성, “여태껏 이런 내가 부끄럽다”던 그 울부짖음이 가슴에 파고를 일으킵니다. 그는 별이 바람에 스치듯 그렇게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이러다 나도 그 짝 날 것 같아 흠칫 놀라고 나니 영화가 벌써 끝났습니다. 돌아 나오는 내내 몽규의 이름만 되뇌는 저의 몸은 동주이고 머리는 몽규입니다.
여운이 긴 영화입니다. 또한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무력하고 무지 몽매한 풍조가, 국가와 민족의 구석구석을 잠식하는 동안, 그 많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 무얼 했을까요? 몽규 같았을까요? 동주 같았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비위맞추기에 전전긍긍했을까요? 과거는 그렇다 치고 지금은 달라졌을까요? 다시 재현된다면 정말 다를까요...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5월을 두고 계절의 여왕이라고들 하지만 저는 가정의 달이라는 표현이 더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온 가족이 한권의 책을, 한 편의 영화를 논하는 가정들이 늘어난다면 참 좋겠습니다. 의식이나 인식의 전환은 하룻밤 눈물 한번 쏙 빼고 나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몇 날 며칠을 부대끼고 쥐어뜯는 수년이 흘러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나가든, 교회 짓고, 재정 불리고, 제 주머니 채워달라는 예배와 기도에 취한 한국 교회, 그 한 편에 기생하는 내 자신이 보이는 듯하여 가슴이 벌렁거려, 교회 화단에 물을 흠뻑 뿌리고 화분들을 볕에 내어주고 나니 좀 후련합니다. 저녁에는 오랜만에 공중목욕탕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이 나라 반도 땅 끝자락, 포항의 한 귀퉁이에서 문득 이런 터무니없는 고백을 해봅니다. “그런 교회를 꿈꾸고, 그런 교회를 품고, 그런 교회와 함께 살고, 그런 교회와 함께 죽겠습니다.”
- 이 한주도 주안에서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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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글 감사합니다.
이런저런 영화는 즐겨 많이 보는데 동주를 못보았네요 ㅜㅠ
목사님의 후기에 혹해서 꼭 찾아보겠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부르짖는 삼손의 모습이 목사님의 이미지와 오버랩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