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9)
TV 채널을 돌릴 때마다 ‘먹방’이라 불리는 먹는 방송이 즐비하다. 나름 살을 뺀다고 애써보지만 한 밤 중에 방영되는 먹방으로 인해서 얼마나 곤혹스러운지 모른다. 그 어느 누가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고 했던가. 그 말이 주는 힘이 대단하다.
이틀 전에는 ‘실치’라는 것이 나오는데,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것이라 군침이 나는 것을 참느라 혼이 났다. 또 보니까 갓 잡아 올린 주꾸미를 가지고 음식을 장만해서 밥상에 올리는데, 그렇게 먹음직스럽게 보일 수가 없다. 어찌 그리도 먹을 것이 많은지 채널을 돌리는 곳마다 온통 먹자판이다.
한 번은 바닷가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 갔다. 작은 조각 케익과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얼마나 달달하고 달콤한지 모르겠다.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다. 어떻게 이렇게 맛나게나 할 수 있는지 기가 막힌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 했던가. 그 향과 맛에 취해드니 사는 것이 이런 맛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구약의 전도자가 말하기를 사람에게 있어 먹고 마시는 낙이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는데, 이 선물이 보통 큰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말이다. 자칫 우리의 삶의 이유가 먹고 마시는 것으로 국한 지어질까 두려울 때가 있다. 노아와 롯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는 것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TV 채널을 돌릴 때마다 보게 되는 먹방을 보면서, 모두들 잘 먹는 것이 잘 사는 것처럼 여기게 되지나 않을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해서 온통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빠져들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육신의 배를 채우는 것으로 종교가 되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게 너무 두렵고 염려스러운 것이다.
오늘도 악한 것들은 육신을 채워가라고 한다. 육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사는 것이 삶의 이유와 전부인 것처럼 해서는 몽매한 인생들을 헛된 배의 종교로 몰아가고 있다. 마치 인생들에게는 영혼이라는 것과 영원이라는 것이 있지도 않는 것처럼 해서는 말이다.
정말이지 온통 떡으로만 사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인생을 오직 떡으로만 채워가야만 하는 것처럼 온통 떡 이야기로만 시끌벅적하다. 그러나 생명의 떡이신 주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신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그렇다. 이 말씀을 곱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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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