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아니, 싸우려면 그냥 말로 싸우지. 왜 치고 박고 싸워.” 그제 수영장에서 아주머니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대화의 내용이다. 어느 부부가 대판 싸움을 한 모양이다. 그 말을 옆에서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말로 안 되니까 치고 박고 싸운 거겠지.’ ‘그 집안만 싸우나 우리도 그런데.’
가정에서도 싸울 일이 많다. 안 싸우고 살기가 쉽지 않다. 두 부부가 맞춰서 산다고 살아도 싸울 일이 많은데, 하물며 인생들이 살아가는 곳곳에는 얼마나 다투고 싸울 일이 많겠는가. 그런 불화와 갈등으로 인해 서로의 관계들이 거북이 등짝 마냥 쩍쩍 갈라질 것이고 말이다. 휴전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문구처럼 우리네 삶에도 동서로, 계급으로, 성별로, 세대로, 빈부로 사분오열 나눠져서는 치고 박고 있는 것이리라.
쌍둥이 녀석들이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자기 전에 벌이는 소동을 보고 있자면 참 가관이다. 서로 자기 쪽으로 이불을 더 끌어당기기 위해서 벌이는 것이다. 한 녀석이 자기 쪽으로 확 당기면, 또 다른 녀석은 안 뺏기려고 하고, 그러다가 잘못되어져서는 한 대를 맞으면 또 한 대를 되갚으려고 하고.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흘러가버리는지 모른다. 서로를 위해 배려하고 양보를 하지 않으면 밤새도록 해도 끝나지 않을 소동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기가 차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치 그것이 내 모습이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쌍둥이 형제라면서도 전혀 형제답지 못한 그 모습에게서 내 모습이 겹쳐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내 것을 더 챙기려는, 내 작은 것까지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내 작은 감정조차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긴장하게 되고, 눈초리와 목의 핏대를 치켜세워야 하고, 마음의 문까지 닫아버리게 되는 것이겠다.
날이 갑자기 더 추워졌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될 모양이다. 이러한 날에 아기 예수의 탄생하신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보내고 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이 당신을 떠나버릴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발을 씻겨주시고, 당신을 배난해서 팔아버릴 가룟 유다에까지 떡과 잔을 나누어주신 주님께서 오신 성탄절을 기다리는 것이다. 날은 추워도 마음은 온정이 남아 있고, 손발은 시려도 신앙은 더 뜨거울 수 있도록 내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