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욘 1:3)
며칠 전 새벽에는 전날에 피곤했던지 새벽에 일어나기가 쉽지가 않았다. 예배를 맡은 목회자가 아니었으면 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도 직분이 일을 하니 피곤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서는 교회로 향해 갔더니 어김없이 그날도 새벽을 깨우는 분들이 하나 둘씩 찾아든다. 저들이라고 해서 푹 자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것인가 싶은 것이 잠시나마 해이해졌던 나를 다잡아보게 본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기 힘든 일들 중에 크게 두 가지는 바로 기도와 전도가 아닌가 싶다. 쌍둥이 ‘도’자 형제들이다.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이 기도와 전도를 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도 힘들어하는 이것들에 대한 말씀을 그렇게나 줄기차게 하시는 것일까. 새벽잠이 얼마나 달콤한데, 왜 그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라는 것인지. 전도를 하기가 쉽지가 않ㄴ는데, 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게 하시는 것인지.
말씀을 맡은 목회자로서 나 자신도 하기 힘든 일을 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그렇게나 전하게 하시는지. “하라” 해도 성도들이 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말이다. 요나가 니느웨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으면 그냥 둬도 괜찮을 성 싶은데, 왜 하나님께서는 굳이 저로 하여금 끝까지 그 사역을 감당하게 하느냐 말이다.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자녀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쉴 새 없이 해대는 부모처럼 말이다.
4월 셋째 주일 17일에는 ‘새 생명 축제, 총동원주일’이다. 그런데 이 날을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벌써 몇 년째, 아니 지금까지 몇 수십 년 동안 이런 날들을 통해서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다그치는 듯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인데, 또 이 날을 앞두고 있으니 말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러시는 것일까. 왜 그렇게 하기 힘들어하는 일을 그렇게도 하게 하시는가. 그냥 몸도 마음도 편안하게 내버려두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럼에도 마구잡이로 그렇게 몰아가시면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언젠가 한 번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오늘날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다 부모님 덕분이다. 그렇게 하기 싫은 공부를 하게 하셨기에 그나마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니, 이제야 그때 부모님들께서 왜 그러셨는지를 알 것 같다.’ 그 글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그렇게 하기 힘든 기도와 전도를 하게 하시는 것은 다 우리를 위함인 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다 나 잘되라고 그러는 것이겠다. 물론 그런 깨달음이 있어도 여전히 힘들 것이겠지만 말이다.
목사님, 귀한 글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마치 저에게 하시는 말씀같아 부끄럽고 죄송스런 생각입니다. 새벽 기도시간에 도저히 졸려서 못참다 졸았을 때 목사님의 불호령같은 야단을 맞은 기억도 참 많습니다만, 그런 때는 '아니 누군 뭐 졸고싶어서 좁니까. 예수님의 그 대단한 열두 제자분들도 조는 것을 예수님께서 직접 깨워주신 모습 못보셨나요?'하는 섭섭한 마음도 들기도 했지요. 전도에 대해선 저 같은 녀석은 참으로 할 말이 없습니다. 비록 기도 제목이 '금년에는 꼭 한 사람이라도 믿지않는 사람을 전도할 수 있게 해주셔요.'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또 기도하겠습니다. 건강과 행복 충만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샬롬! 목사님! 어째 제목과 내용이 이순락 장로님의 <춘삼월 꽃놀이 패 그리고 로맨스> 제목과 같이 이상야릇 하네요. 박목사님의 귀한 글 감동을 받습니다. ^-^
부족한 글에 답글들을 달아주셔서 뭐라 인사를 드려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습작정도로 긁적여봅니다만 글이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글 속에 삶이 잘 담겨질 수 있도록 모두들 기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햇살 가득한 봄날로 행복 가득한 날들 되세요.
번호 | 제목 | 이름 | 날짜 | 조회 수 |
---|---|---|---|---|
글을 쓰시기 전에 꼭 읽어주십시오! +3 | ||||
22 | 노회 서기 및 임원, 실행위원회 보십시요 +2 | |||
» | ‘요사람이 나다’ +4 | |||
20 | 제2탄 <춘3월 꽃놀이패 그리고 로맨스> 소감 +8 | |||
19 | ‘부활을 봅니다.’ +1 | |||
18 | 인사 올림니다. 징로 부노회장 이명형 +2 | |||
17 | 신임 노회 서기입니다 반갑습니다 +3 | |||
16 | [북뉴스 칼럼] 책 읽는 그리스도인 +2 | |||
15 | 짧은 생각 +2 | |||
14 | 춘3월 꽃놀이패 그리고 로맨스 +2 | |||
13 | “살 것 같다.” +1 | |||
12 | 경북노회 137회기 정기노회를 회고하며...... +2 | |||
11 | ‘너 무엇 주느냐?’ | |||
10 | ‘난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서’ | |||
9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
8 | 하노이 취재여행 유람기(2) | |||
7 | '찾는 자의 바다' +1 | |||
6 | 하노이 취재 유람기(1) | |||
5 | ‘작은 여우’ | |||
4 | 137회 경북노회 정기노회에 내고교회가 청원한 안건 공유. | |||
3 | 경북노회 주소록 수정 사항 |
귀한 글 감사합니다.
기도, 전도 쉬운게 아니지만 살기위해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 처럼 전도도 부모의 마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교회에 첫발을 딛게 하는게 낳는 것이라면
교육받고 세례받아 성도의 삶을 살아가도록 섬기는 것은 기르는 과정이 아닐까합니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기도와 전도로 이자리에 서 있다면 잘 양육받은 것이겠지요.
한명만 낳아 잘 기르자...가 아니라
힘 닿는 데까지 많이 낳아 잘 기르는게 하나님의 뜻이 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