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민족과 함께

이사야 61:1-3; 로마서 8:24, 31-35; 마태복음 5:9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FOR PEACE OF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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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철 
설교일 2019-04-28 
설교장소 한맘교회당 

베풂 속에 담겨 있는 즐거움(11:1-8)한맘

 

  우리 신앙인들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듯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모든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것인데, 그 삶에 예배도 포함됩니다. 모든 삶이 엮여져서 드려지는 것이 예배인 것이지요. 삶이 없는 예배는 없는 것입니다. 삶과 분리되어진 예배는 없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자로 지내오면서 유독 예배에만 신경을 쓸 때가 많았습니다. 이 예배를 집례하기 위해서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과 이 예배에서 인생의 승부가 결정되고 판가름 나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어떤 때는 9회 말 투아웃 만루 찬스에서 4번 타자로 나와서 홈런을 쳐야한다고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예배의 중요성을 이렇게 나름 내린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1:11)라는 것이지요. 당신께서는 그들 백성들이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가지고 드리는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제사들은 그저 성전 마당만 밟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며,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변호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제도권의 많은 교회들이 교회 중심’ ‘목회자 중심으로 교인들을 묶으려고 합니다. 그럴 듯한 명분을 세우지만 속셈은 어떻게든 교회당에 묶어두려는 것이 강합니다. 살아있는 호랑이로 세상에서 호령하면서 살아가야 할 신앙인들을 교회당 우리 안에 가둬두는 꼴이랄까. 신앙의 크기가 마치 교회당 출입 횟수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나는 하루 종일 교회당에 있었다.’ ‘나는 일주일 내내 교회당에서 살았다.’는 것을 대단한 자랑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게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당시 성전에 거했던 성전주의자들이 가장 믿음이 좋아야만 했을 것이지만 이들보다 더 큰 질책과 책망을 받았던 이들이 있었습니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27)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우리 신앙인들이 머물러 있어야 할 자리는 교회당이 아니라 세상의 한복판입니다. 교회당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던 이 세상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주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모습 그대로 서로 섬기고 사랑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각각의 신앙인들로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자리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힘을 북돋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일주일을 살아내는 힘과 인생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어야 하지요. 삶을 세우는 주축으로 교회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삶을 응원해주고, 격려해주고, 기도해주고, 쉼을 주고, 싸매주고, 치유해주어야만 합니다. 교회는 교회생활을 잘하는 교인을 양산해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생활을 잘하는 신앙의 동지를 세워내는 곳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부활주일에도 여느 주일처럼 풍성했습니다. 공동체 나눔의 시간을 끝내고 각자의 자리들로 헤어질 때에 손에 이것저것 쥐어져 있었습니다. 양승기 집사님이 여성도들에게 그러셨지요. “어디 친정집에 다녀오십니까?” 풍성하다는 것이지요. 한맘 친정집에 다녀가는 것입니다. 친정집에는 아끼는 게 없고 아까운 게 없습니다.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애달픈 곳이 친정입니다.

  요새도 부모님께서는 주일이 지나면 전화를 하셔서 물으십니다. ‘살만 하냐?’ 다른 가족들도 궁금해 합니다. 그래서는 한맘 밴드 주일 모습을 가족 밴드에 올렸습니다. ‘이렇게나 잘 먹고 잘 살고 있느니 걱정들 마십시오.’ ‘, 부자네.’ 김정희 집사님 남편 되시는 박경호 집사님이 우리가 잘 먹는 것을 보고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몰라요. 그래서 점심만 드시러 오라고 했습니다.

  한맘 친정집에 다녀가면서 음식이나 선물만 싸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지요. 함께 나누었던 신앙의 모습과 삶의 이야기들을 봉다리와 보따리에 바리바리 싸서는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지고 가서는 또 가족들과 동료들과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끼리만 좋았던 것에서 끝내지는 것이 아니지요. 우리를 통해서 그 좋았던 것들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 한맘 친정집에서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을 배워가면서 인생의 의미를 더해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과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알아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처세술과는 다른, 진성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온 몸으로 부딪혀가면서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들을 터득해 갈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큰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도 서툴고 어설프지만 그 부족한 것들을 서로 채워주고, 못되고 모난 부분들이 꺾여지고 깎여지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는 것에 있어서 흉내라도 낼 수 있다는 것이 큰 은혜요 축복이요 감사입니다. 이 자리에서의 소중한 경험들과 가치들이 또 다른 자리로 이어져가게 될 것입니다. 삶의 지경과 지평이 더욱 더 넓혀지면서 큰 물줄기를 형성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네 삶이 계속 커져야지요. 쑥쑥 자라가야 합니다. 거기에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자연을 보는 즐거움은 새로움이지요. 하루하루가 다르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새로운 모습에 즐거움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겠지요. 먹는 것처럼 먹어야 잘 먹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사는 것처럼 살아야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즐거워야 합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즐거워야지요. 하루하루를 기대해야만 합니다. 아름다움으로 빛을 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7절의 말씀입니다.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로다.’ 했습니다. 8절 상반절에서도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 할지로다.’ 했어요. 태양의 빛이 비치는 하루하루의 삶이 즐거움으로 가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는데,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되지요. 부활을 미처 믿지 못했던 엠마오로 향해가던 두 제자의 슬픈 얼굴빛을 띠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성경은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지혜자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 인생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즐거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1절에서 보면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고 했습니다. 다소 엉뚱하고 생뚱맞은 표현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물 위에 떡을 던져라.’ 이 말씀의 뜻은 어떤 대가를 바라지 말고 베풀고 보라는 것입니다. 보상을 바라지 말고 나누고 보라는 것입니다.

  떡이 만들어 보니까 쉽게 되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작년에 쑥떡을 빚어서 함께 먹었습니다만 처음에 저희 내외가 쑥을 나름 많이 뜯었다고 생각을 하고서는 방앗간에 갔습니다. 그랬더니 주인 분이 이 정도 가지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또 나가서는 뜯어서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래도 좀 부족하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받아놓은 쑥을 더 넣어서 떡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떡을 물 위에 던지라는 것입니다.

  주일 점심을 한 끼 준비하려면, 어느 때는 꼬박 이틀의 시간이 걸립니다. 캐고, 씻고, 식초에 담가놓고, 또 씻습니다. 그 과정이 만만치 않습니다. 목사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부터 설교를 준비하느냐?’라는 질문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준비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은 것입니다.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중에 채소를 내놓으려면 어떻습니까. 땅을 갈아야지요. 거름을 줘놓아야지요. 씨를 사야지요. 뿌려야지요. 물을 줘야지요. 그리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런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귀한 음식과 양식을 물 위에 던지듯이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말고 선행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몸집도 마음집도 작을 때였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 포도를 땄던 적이 있습니다. 빗물에 터져가는 포도를 딸 때에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몰라요. 애써 지은 한 해 농사가 망쳤다는 생각에, 눈에서 흐르는 물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가졌던 생각입니다. ‘이렇게 애쓰고 힘써 지은 이 포도를 누구에게든 아까워서 못 주지.’ ‘내가 어떻게 벌었는데, 이것을 누구에게 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들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갖다 주어서 물의가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못 먹을 음식을 음식물 쓰레기 처리하듯이 처리해버린 것입니다. 참 있을 수도 없는, 있어서도 안 될 일이지요. 사람이 이럴 수도 있음을 그들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는 채소를 손질하고서는 꼭 제가 먼저 우걱우걱 씹어 먹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혹자는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먹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나눠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자기도 못 먹을 음식을 내놓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을 베풂 속에 담겨 있는 즐거움으로 잡았습니다. 어떤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나누고 베푸는 선행 속에 즐거움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아가도록 곳곳에 즐거움을 담아 놓으셨습니다. 주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의 즐거움을 비롯해서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나눔과 베풂 속에도 그 즐거움을 담아놓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선물 같은 날들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백성들로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너무 감사한 것이지요.

 

  지난 부활주일에는 여러분들이 마음을 담아 준비해주신 선물을 들고서는 몇몇 집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모든 분들이 감사함으로 잘 받습니다. 현관문이 열리면서 말문도 이제는 조금씩 열려지고 있습니다. 산 주인 어르신에게는 주일날 먹었던 음식과 함께 한맘표 장아찌와 발효액도 곁들여서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너무 좋아하시는 겁니다.

  고단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그 얼굴에 싱긋이 웃는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 그 집에 들어설 때에는 저녁 어스름한 시간 때였었는데, 홀로 바깥에서 우두커니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렇게 안쓰럽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음식을 받아들고서는 너무나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그 분이 배시시 웃음을 띠면서 좋아하시는데, 저도 덩달아서 좋았습니다.

  그렇게 느껴질 수 있겠지요. ‘,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나에게도 이런 이웃들이 있구나!’ 웃음이 배어나듯 감동이 배어나는 것이지요. 삶이 충족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눔과 베풂 속에 담겨 있는 기쁨이요 즐거움입니다. 그 저녁에 제가 얼마나 마음이 들떴는지 모릅니다. 줄만한 것이 장아찌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말문을 여십니다. “대구에 가서 일주일 동안 먹어야겠다.”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빈 공장 같은 것이 나오면 직원들로 그 공장을 지키게 하는데, 지금 이 분이 그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은 어렵지 않은데, 월급이 그렇게 많지가 않다고 하십니다. 월요일에 가셨다가 금요일에 오신다고 합니다. 다음에 더 드리겠다고 하니까 또 좋아하십니다.

  그 장아찌를 들고 이제는 말문을 트고 지내는 미장원에도 찾아가봐야겠습니다. 양남에서 최현주 집사님이 주도적으로 연로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반찬 봉사를 몇 해에 걸쳐서 하셨습니다만 이 한맘에서는 장아찌 이웃사랑 전도대를 조직해서 사명을 감당해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 날 저녁에 저희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예전에는 모두들 이웃사촌이 되어서 콩 한쪽도 나눠 먹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만 저희 어머니께서도 그랬습니다. 지나가는 거지도 그냥 가게 하지 않았습니다. 명절날 가족들이 음식을 다 차려놓고 먹을라치면 꼭 어머니는 그 음식들을 챙겨서는 혼자 사는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오십니다.

  어린 나이에 굳이 왜 저러시나.’ ‘우리 가족들이 다 먹고 나서 가도 충분할 것인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만 이제야 어렴풋이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야 한다는 것이지요. 거기에는 홀로 외로이 있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베풂 속에 즐거움을 주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무리들과 말씀만 나누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는 풍성한 말씀만큼이나 음식도 늘 곁들여졌습니다. 오병니어, 칠병니어가 있었지요. 그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했습니다. ‘그들이 배부른 후에

세리 마태나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모든 이들과 함께 음식을 거나하게 잡수셨습니다. 얼마나 잘 잡수셨으면 예수님을 흠잡으려는 세력들에게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고 보여겠습니까. 그런 흠집 내기와 핀잔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셨지요.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도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고 있었던 두 제자를 찾아가셔서 말씀과 함께 음식을 나누셨습니다. 디베랴 바다에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갔던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도 찾아가셔서는 친히 생선을 구워놓고 그들을 기다리셨지요. 예수님께서는 구워서 먹는 생선맛을 아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가 얼마나 잘 먹으면 먹으러 교회에 오시는 분들이 있겠습니까. 한맘가족들이 함께 식탁에 앉습니다.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지요. 그 식탁에서 정과 의리와 사랑이 새록새록 자라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함께 음식을 나눔으로 즐거움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 순간을 통해서 인생의 소중한 가치와 자산이 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 부자와 영적인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지혜자는 우리에게 또 귀한 사실을 더하여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물 위에 던져진 그 떡을 도로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했습니다. 너무 놀랍고 신기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물 위에 던져졌던 그 떡을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을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환대는 또 다른 환대를 낳게 된다는 것이지요. 아무런 계산을 하지 않고 대가나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행한 그 선한 행위에 놀라운 역사가 더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네 삶에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의 그러한 삶에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리라.’(6:38)

  여러분, 물 위에 떡을 던지는 것과 같은 행위는 하나님을 믿기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해 가신다는 것을 믿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어떤 여건과 환경 가운데에서도 그렇게 행할 수 있는 것이지요. 뿌린 대로 거둔다는 생명의 제 1원칙이 여기에서도 실현되는 것입니다.

 

  제가 그 날 저녁에 음식을 챙겨들고 산 주인 어르신께 갖다 드렸더니 좋아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또 있었습니다. 그 분이 교회당에 돌을 잔뜩 쌓아놓은 것을 보셨나 봅니다. “어떻게 할 거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저렇게 쌓아두었다.” “그러면 자기 집 컨테이너 창고 바닥이 비워 있으니 거기에 채워놓으라.”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이지요. 어디 치울 때가 없어서 그 돌무더기를 볼 때마다 걱정이었는데, 그날 저녁에 걱정을 말끔히 날려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치운다고 힘은 좀 들었지만 말입니다.

  또 하나는 산에 있는 것들도 마음대로 가져다 쓰라고 하십니다. 그 다음날 바로 양파와 마늘을 심어놓은 산 쪽으로 가서는 대나무들을 걷어냈습니다. 걷어내다 보니까 예전에는 밭이었습니다. 부추도 자라고 있었고 머위도 있었습니다. 거기도 꽤 넓은데, ‘뭘 심을까.’를 고심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에게 주말농장을 하라고 할까 싶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삶의 지경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가 먹었었던 음식과 장아찌 좀 가져다 드렸을 뿐인데 되돌아오는 것은 너무나 컸습니다. 산을 다 얻은 것 같았고, 더 큰 삶을 선물로 받은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 같아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땀을 흘리면서 수고를 더해야 할 것이지만 그래도 더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지요. 집사람에게 그랬습니다. “여보, 어때. 이제는 산을 조금씩 더 깎아볼까.”

  여러분, 한 사람을 만나간다는 것. 이웃을 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 한 사람 속에는 지나온 삶의 흔적과 경험,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과 기대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만나가고 알아간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을 장아찌를 통해서 만나가고 알아가는 것이지요. 우리의 작은 것일지라도 성의와 정성이 곁들여지면서 융합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모르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이지요. 2절 말씀입니다.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했습니다. 전체적인 문맥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많이 베풀고 나누어주다 보면, 내게 닥치게 될 어려운 때에 내가 그간에 베풀었던 선한 행위가 도로 찾아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의 힘을 가지고 어떻게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능과 깡을 가지고 애쓰고 힘써보지만 그것으로 어떻게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3절의 말씀처럼,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그 비가 땅으로 쏟아지게 됩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나무가 북으로나 남으로나 어느 방향으로 쓰러지게 되면, 그 쓰러진 방향으로 있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겪어야만 하는 일들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지요.

  근래에 강원도에서 산불이 발생을 했습니다. 강한 바람까지 불어서 걷잡을 수 없는 큰 불로 인해서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처럼 우리네 인생에서 당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라도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에 본문의 지혜자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떡을 물 위에 던지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일곱에게나 여덟에게든 나눠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알 수 없는 인생일 것이지만 그간에 베풀어두었던 선행이 도로 찾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역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5,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니 베풀 수 있을 때 베풀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물 위에 떡을 던지듯이 아무런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말고 하라는 것입니다. 6절에,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 수 못함이니라.’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뭐라고 할 수 있을 때에 어떻게든 해야만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말씀처럼, 밝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캄캄한 날도 많기 때문이지요. ‘다가올 날은 다 헛되도다.’ 했습니다. ‘다음에 하지.’ ‘있어야 하지.’ 그러다가 가는 인생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한 번 왔다가 가는 인생,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없고 사는 즐거움도 없이 사는 헛된 인생이지 말아야 합니다. 모두들, 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믿으며 물 위에 떡을 던지면서 그 속에 담겨있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34 하나님을 찾고 또 찾습니다.
33 지어져가야 할 성전
32 살다 사랑하다
31 하나님의 모성애
30 어머니 품에 안긴 아기 같이
» 베풂 속에 담겨 있는 즐거움
28 보여지는 부활 생명
27 다 이루신 예수님 +2
26 하늘 문 자리
25 봄이 와 있습니다
24 가위손 하나님
23 2019년도 한맘녀
22 왜 마리아여야 했을까?(대림절 셋째 주일)
21 사랑으로 세워지는 정의(대림절 둘째 주일)
20 주님이 통치하는 나라
19 쉼이 있는 터
18 우선 순위가 중요합니다.
17 날마다 개혁되어져야 합니다(종교개혁주일)
16 시가 흐르는 시월
15 이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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