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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두 2016-02-19 16: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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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취재여행 유람기(1)

 

빨간불 구미경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취재여행

 

지난 1월 19일(화) 새벽 3 : 30발 구미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인천 공항 행 리무진을 승차, 이른 아침 7시경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우리의 일행은 구미시청 출입 기자단 5명이었다. 순수 친목회 성격의 기자단으로 ‘바른언론포럼 청음회’(회장 서주달 한국NGO신문 대구경북취재본부장) 회원들이며 지난 해 말부터 계획했던 ‘베트남 취재여행’이었다. 취재여행이라고 하니 제법 거창한 듯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단지 구미 경제의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돌파구를 찾기 위한 일환에서 우리들 청음회원들이 뜻을 모은 것이었다. 몇 마디만 첨언 한다면, 구미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삼성전자와 LG전자라는 두 거대 기업이 구미경제의 버팀목으로 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특히 삼성전자 구미시업장이 소문에 의하면 텅텅 비었을 정도(?)인데, 이유인 즉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구미의 상권 전반이 어두운 먹구름에 쌓일 정도로 침체해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 청음회 기자단에서 이번 취재여행을 통하여 실상을 파악하고 향후 구미경제에 작지만 희망의 불씨라도 일으켜 보기 위한 목적에서 취재여행을 계획하였고, 그렇게 나선 것이다.

 

(필자는 구미미디어 편집국장이라는 직함도 있음과 동시에 경북하나신문 논설위원이라는 직함도 가진 기자신분임)

 

~ 그런데 출발 전에 삼성과 LG 두 회사 측에서 우리들의 뜻을 이해하면서 현지 여행에 따른 편의제공의 뜻을 표했기에 우리들은 지레 짐작으로 상당히 고무적인 기분에 쌓여 있었다. 두 대기업 실무책임자급에서 구미시청 출입 기자들이니까 기왕이면 구미시 관련 부서에서 정식으로 협조 공문을 보내주면 업무에 도움이 되겠다고 했다. 그래서 구미시 당국에 이러한 뜻을 전달하고 부탁했었다. 당연히 쉽게 처리해 주리라는 생각으로. 그런데 정작 구미시 경제관련 부서에서 “No."라는 협조거절로 인해 솔직히 출발 직전부터 우리는 기분이 계속 우울한 상태였다. 실제적으로 준비해야 할 여행경비도 이 하나의 브레이크에 걸려 최초 계획했던 비용의 3~4배 가까이 준비해야만 했던 것이다. 공무원 한 사람의 힘이 참으로 대단하구나(?!)라는 불쾌한 기분을 떼쳐 낼 수가 없었다. 이 후에 쓸 것이지만 우리들은 ‘당했다’는 기분에 모두가 분기 탱중한 마음으로 여행에 임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기자들의 근성’이 이후에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독자들의 상상에만 맡기도록 하겠다. 우리들은 실제로 거의 융단폭격 수준의 구미시에 대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은 상태로 연속 시리즈 연재를 진행하고 있는 중에 있다. 나름대로 큰 꿈을 가진 구미시장의 보랏빛 청사진을 빗나간 공무원 한 사람의 과잉 충성으로 사태를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으니 참으로 유구무언이다 ~

 

하노이 영업용 택시는 한국 소형차가 주도

 

아침 10 : 35에 하노이 행 베트남 항공 여객기를 타고 이륙, 오후 3 : 20경(현지시각 오후 1 : 20)에 하노이에 도착하였던 것이다. 나의 휴대폰은 별도의 로밍이 없어도 자동적으로 로밍되어 휴대폰 사용에는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국제전화이므로 요금 폭탄(?)이 무서워 사용을 최대한 자제했던 것이다.

하노이 공항에 도착하니 우리 일행의 회장님과 평소 수 십 년간 지인관계에 있다는 현지인 가이드의 승합차에 올라 이 후부터 떠나 올 때까지 편안하게 여행을 잘 할 수가 있었다. 공항 택시 주차장에는 거의가 소형택시로 기아의 모닝과 현대의 i10(이 모델은 국내에선 보지 못한 차종이었다)이 넘쳐났고, 중형택시로는 일본의 토요타 승용차가 많아 보였다. 아무튼 하노이 공항에서 영업용 택시가 우리나라 차량들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국내 어느 낯설지 않은 공항에 도착한 기분인 것 같았다.

공항을 벗어난 시골 농촌 풍경은 너무나 평화롭게 보였다. 농촌의 풍경은 어디나 같았다. 마치 대도시의 풍경은 서울이나 북경이나 뉴욕 모두가 비슷한 것처럼. 논갈이 하다 쉬고 있는 소들이 한가롭게 꼴을 뜯는 모습은 시골 고향의 우리 농촌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슨 연못 같은 곳에는 오리 농장인지 오리 떼가 수백에서 수천마리나 되어 보이는 풍경은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하는 낯선 이국의 진풍경이었다.

   

베트남은 오토바이 천국

 

하노이 시내로 들어오니 시가지 전체가 오토바이 천국이었다. 오토바이 행렬이 수천, 수만인 것처럼 보였다. 영업용 차량, 업무용 승합차량(현대자동차 신형 스타렉스가 대종을 이루었다) 등 차량들을 비집고 사고 없이 기묘한 곡예운전을 하는 남녀 오토바이 운전자들의 모습은 토픽감이고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장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그저 일상의 평범한 모습인 것으로 보였다.

우리들은 5성급 고급 호텔인 하노이 대우호텔에 도착, 여장을 풀었다. 하노이 대우호텔은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이 설립하여 지난 30여 년 동안 베트남 최고급 호텔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바로 곁에 어마어마한 초호화 매머드 급 롯데호텔과 쇼핑센터가 들어선 바람에 하노이 대우호텔은 ‘아, 옛날이여’식의 흘러간 노래 신세로 보였다.

우리들을 가이드하고 있는 베트남 현지인은 우리 청음회장인 서주달 한국엔지오신문 본부장과 수십 년간 지기라고 했다. 서주달 회장은 젊은 날 군대시절 베트남에 파병된 ‘해외참전 용사’로서 그동안 베트남에 사업 목적으로 수십 차례 드나들었다고 했다. 그런 연유로 베트남 현지인 가이드 둥씨와 인연을 맺었다고 했다. 둥씨는 베트남 군(軍) 최고 계급인 3성 장군의 맏아들로 젊은 시절 북한의 김책공대 유학을 했었다고 했으며, 북경대학과 체코슬로바키아 대학에도 유학을 했던 사람으로 ‘한국통’이면서 베트남의 고급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공산당원 신청 후 18년 만에 정식으로 공산당 당원이 되었다는 등의 예사롭지 않은 얘기들도 들려주었다. 베트남이라는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가문이 그렇게 대단해도 공산당원이 되기는 그렇게나 힘들다고 한다. 그렇지만 일단 공산당원이라는 신분을 얻게 되면 일상생활에 많은 혜택을 받는다는 설명도 들었다. 필자가 과거 30년 쯤 전에 인도 마드라스라는 항구도시에 갔을 때 인도의 신분계급제도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 무슨 얘기냐면 인도에서 손꼽히는 거대한 맥주회사 회장으로 재벌 중의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출신 신분이 낮음으로 해서 유명 골프클럽에 회원자격을 얻지 못해 그 골프장에 출입을 못하고 있다는 전언에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코트라 직원은 당당하게 우대받는 골프회원이 됨에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하노이 시가지 길가에는 공산당 깃발들이 무수히 펄럭이고 있었다. 옛 소련의 국기에서 보았던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낫과 망치가 그려진 붉은 색 깃발들은 공산당 전당대회가 있기 때문에 꽂혀진 것이라 했다.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 배운 공산당은 무서운 집단으로만 각인되어 있는데 현재의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라고 해도 전혀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없는 분위기였다.

 

세계 최강 미군을 물리친 자부심 강한 민족

 

민족주의 지도자 호치민은 죽었지만 죽은 것이 아니다. 그는 베트남 사람들의 영원한 살아있는 국부(國父)이며, 지도자이다. 그들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자존심 강한 민족이다. 그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으로부터 천 년, 프랑스로부터 1백년, 일본에 5년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30년 간 지배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국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과 싸워 전쟁에서 승리, 미군을 몰아낸 자존심과 자부심 강한 민족임에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는 베트남 민족이 존경스럽다. 인구 700만의 하노이는 서울의 5배 크기의 면적이라고 한다. 시가지 곳곳에는 개발의 붐으로 빌딩이 한창 세워지고 있고, 땅이 넓은 탓인지 시내 곳곳에 인공호수가 많이 눈에 띈다. 특히 인공 호수는 야경이 뛰어 났다. 호수 주위의 가로수에도 각 가지 네온사인으로 형형색색 치장을 하여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아, 관광 인프라란 이렇게 조성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절감케 했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저녁식사를 위해 하노이 유수의 베트남 전통 요리 집에 갔다. 갖가지 전통 요리를 맛있게, 배불리 먹고 향한 곳은 베트남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자랑하는 발 맛사지 업소였다. 한국인 관광객들로 문전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한국의 관광회사 이름을 크게 나타내는 대형 리무진 관광버스들이 도열해 있었는데, 그 광경은 마치 국내의 어느 관광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 일행 다섯 명은 모두 한 방에서 다섯 명 아가씨들의 서비스를 받고 여행 첫날의 피로를 말끔히 풀었다. 아가씨들은 검정색 초미니 스커트를 입고 유혹하는 듯한 몸짓도 인상적이었다. 그들 5명의 아가씨들에 대한 팁과 가이드의 수수료까지 포함하여 75달러를 계산했다. 일행 중 누군가가 말했다. “한국에 비하면 한 사람 값도 안 되는, 너무 싸고 좋은 서비스다.”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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