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가져보는 생각이다. 내가 어떤 사람일까. 다른 이들에게 나는 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일까, 아니면 불편하기 그지없는 사람일까. 숨통을 트게 해 주는 사람일까, 숨통을 조이는 사람일까. 밥을 먹을 때 함께 앉아서 먹고 싶은 나일까, 아니면 같이 앉아서 먹게 되는 때면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르게 만드는 사람일까.
오래전 청년 때에 어느 어르신과 기차를 타고 김천에서 대구까지 가게 될 때가 있었다. 옆 좌석에 꼼짝없이 같이 앉아서는 갈 수밖에 없었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잊히지 않는 것을 보면 적잖이 긴장을 했던 모양이다. 고개도 제대로 돌릴 수 없으면서 숨도 편하게 쉬지 못했던 지난날의 기억이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시간이 몇 시간이나 걸린 것 같았으니, 그때의 경험은 나로 하여금 내 삶의 옆 좌석에 앉게 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는 귀중한 경험으로 자리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인생이라는 긴 기차 여행을 떠나는 중에 내 옆 좌석에 앉게 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힘들어할까, 아니면 힘을 가질까. 그 여행을 나와 함께 끝까지 가고자 할까 아니면 얼마 가지 않아 중도에 내려버리지나 않을까.
나를 대하는 다른 이들을 보면서 나를 보게 된다. 나를 대하는 그들에게서 내가 그들에게 대했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취하는 몸짓을 비롯해 말투, 시선, 표정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들임을 알게 된다. 거기에 내 자신이 다 담겨져 있는 것이지. 꾸며서 나오는 위선적인 것들은 금방 그 실체를 드러낼 수밖에 없기에 작다고 여겨지는 것들 하나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배여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 그 작은 것들조차도 나를 대하는 다른 이들의 심리적 거리를 재는 가늠자가 될 것이기에 말이다.
글을 써가면서 느껴지는 것이 있다. 결국은 내 문제라는 것이지. 문제는 내게서 찾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평생을 함께 가야 할 내가 내 자신으로 인해서 뭐가 그리 못마땅한 것들이 많은지 다그치고 윽박을 지르면서 나를 그리도 못살게 굴었는지 말이다.
그러니 나는 나로 인해 힘이 들었던 것이고, 내가 힘들어하고 있으니 나를 대하는 이들이 힘들었을 것이고. 내가 편해야 다른 이들도 편할 수 있겠다. 내가 나로 웃을 수 있어야 누구라도 내게 웃음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고, 내가 내 안에서 자유롭고 자연스러워야 모두들 내 안에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겠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이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께서는 나로 당신을 배우라 하신다. 그래야 내 마음이 쉼을 얻을 수 있을 거라 하신다. 쉼표 없이 바쁘게 사느라 숨이 가쁘고 숨통이 막혀버릴 것 같은 세상살이에서 쉼을 줄 수 있는 쉼터 같아야 한다면 주님을 배우고 닮아 온유하고 겸손해져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