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지난 교육 전도사 때에 담임목사님이 출타중이라 수요 예배를 맡아서 설교를 했던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설교문이 남아 있어서 보게 되면 마치 유치원생들이 그림을 그려놓은 듯 유치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는지 놀랍다. 사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지난 시간 동안에 걸쳐서 모아 두고 있는 설교문들을 보면서도 그렇다. 말씀의 본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들이 적혀져 있는 것을 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어떻게 이런 설교들로 성도들과 함께 할 수 있었는지 미안한 마음이고 하나님께는 한없는 부끄러움이다. 그나마 그때는 최선을 다해 준비를 다한 것 같았는데, 지금에서 보면 그렇게 싱겁고 빈약할 수가 없다. 요즘 들어서 하고 있는 설교문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 생각하지 참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종종 만나게 되는 이들에게서 듣는 소리가 있다. “목사님, 목사님들은 좋겠습니다. 해 놓은 설교를 다시 써먹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게 아주 부러운 모양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불과 몇 개월 전의 설교문만 들여다보더라도 그 내용이 빈약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그러한 설교문으로 다시 설교를 한다는 것은 큰 고통과 괴로움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먹을 수 없는 것들을 남들에게 먹이게 기분이랄까. 내게 은혜와 감동이 되지 못하는 내용들을 가지고 어떻게 회중들에게 은혜와 감동을 선사해줄 수 있겠는가.
며칠 전 새벽, 한 없이 약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면서 흐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진리’ ‘구원’ ‘영생’ ‘자유’ ‘사랑’ ‘용서’ 참으로 무겁고 무서운 말들이 아닐 수 없는데, 이 엄청난 영적 거대 담론 앞에서 작아지는 내 자신을 보는 기분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껏 뭘 그리 안다고 떠들어 댔는지 하나님 앞에서 죄송스럽다.
인생의 큰 곤경을 앞둔 이들 앞에서, 병들어 지친 심령들을 두고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들 앞에서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는 것인지. 내가 체험하지 못한 말들의 나열이 얼마나 치유가 되고 위로가 되며 용기와 희망이 될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좀 더 무거워져야겠다. 기도에도 무게가 실렸으면 하고 삶에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건네는 한 마디 한 마디 뿐만이 아니라 말없이 그저 있어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게가 느껴지는 모습이었으면 정말이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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