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지금도 아내와 티격태격 싸울 때가 있다. 20년째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엇비슷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신혼 때처럼 사소한 것으로도 말다툼을 할 때가 있다. 주로 ‘당신이 내게 해 준 것이 뭐가 있느냐?’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설거지도 자주 해 주는 것 같고, 빨래도 잘 널어주는 것 같은데….. 그런데 집사람이 한다는 말이다. “아이고, 고거 몇 번 해 준 것 가지고서는 말이야. 누가 들으면 다 해 준 줄 알겠다.”
그러면 못내 서운하다. 내 딴에는 아내가 고생할까봐 몇 번씩이라도 도와준다고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면 그 말을 받아서는 그런다. “그래. 알았다. 해 줘도 고마워하지도 않으니 이제 당신이 혼자 다 해라.” 그러면 옆에서 아이들이 엄마 편을 들면서는 그런다. “듣고 보니 아빠가 잘못했네요.”
사람은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참 짙다. 나는 해 준 것을 생각하는 반면에 상대는 못 받은 것만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다툼이 많고 갈등이 많은 모양이다. 어떤 목회자는 교회를 향해 그런다. “이 교회는 내게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 나의 가장 좋은 시절에 이 교회에서 사역을 했으니 말이다.”
이와 똑같이 아이들에게 해 주는 말이 있다. “이 녀석들아, 너희는 복 많이 받은 줄 알아라. 세상에 아빠 같은 사람이 어디 있니.” 아내를 향해서도 “당신은 나 만난 것을 복인 줄 알아라.” 덜 익어서 목이 뻣뻣한 벼 이삭처럼 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니, 이런 모습으로 무슨 선한 역사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하나님 보시기에 가당치도 않은 모습이겠다.
추수를 앞두고 있는 들녘의 벼 이삭들처럼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겠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아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우리네 삶이어야 하겠다. 교만함으로 해 준 것만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모습이 아니라 겸손함으로 못해 준 것만이 생각나는 모습이어야 하겠다.
한 번은 기도하는 중에 내 자신이 너무나 못나 보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흉한 몰골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못내 부끄러워지는 시간이었다. 그때 드는 생각이 있다. 해 준 것이 없는데도 같이 살아주는 아내가 고맙고, 못난 부모 만나서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나 같은 목회자 만난 성도들에게 미안하고 ….
‘나 같은 사람이어서 그래도 다행인 줄 알아라.’는 자기 착각에 빠졌던 내 자아가 깨뜨려지는 시간이었다. 얼마나 깨지고 깨뜨려져야 하는 것일까. 얼마나 부서지고 낮아져야 사도 바울처럼 죄인의 괴수인 내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오늘 이 시간에도 하늘의 한량없는 은혜를 간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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